한줄 詩

관계에 관한 짧은 검색 - 천수호

마루안 2021. 6. 28. 21:39

 

 

관계에 관한 짧은 검색 - 천수호

 

 

나막신만한 배들이 정박해 있는

낙동강 하구언 작은 나루에

짧은 철로 두 개가 강물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잿빛 물은 깊고 철로는 해맑은데

나는 멀리 가야 할 사람

 

철로 끝에 가만가만 발끝도 대어보고

손끝으로 밀어봐도

쓰임이라는 건 도저히 잡히지 않고

투신이라는 벚꽃 잎만 낭자하게 날리는 사월

 

물결이 깨웠다 재웠다 하는 강물 위

물과 철로의 관계는 검색되지 않지만

배와 철로는 금방 닿을 수 있다

 

배를 미는 철로, 배를 맞는 철로, 배를 들어올리는 철로

가볍게 검색대를 통과하는 사람처럼

배를 한 번 들어올렸다가 내리는 관계

 

쓰임을 모르는 철로가 곤두박질친

바닷물의 합수 지역

강은 짐이 없고

바다는 챙이 큰 구름을 짐처럼 이고 있고

저 배와 관계없는 나는

구름보다 멀리 갈 사람

 

 

*시집/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 문학동네

 

 

 

 

 


오륙도 - 천수호


너만 알고 있어라

 

사십 년 동안 밀어낸 말이

저기 눈앞에 모래로 남아 있다

넌 내 아들이 아니란다

오륙도가 풍랑에 잠긴다

울음소리를 덮으려고
파도가 모래밭을 때린다

 

넌 태생(胎生)이 아니라 난생(卵生)이었어

듣지 않으면 좋을 대답을 왜 들으려는지

그리하여 희망은 맹목적인 것이 된다

 

축축해진 모래가 마른 모래 쪽으로 송곳니 뾰족한 아가리를 벌린다

 

청동 악기를 들고 다니는 습관은

저 큰 울음을 껴안으려는 것

 

다섯 자식인지 여섯이었는지

눈빛의 깊이로는 알 수 없다

 

숱한 내전(內戰)으로 모래밭은 좁아졌지만

늙은 해운대에서 바라보면

차마 숨길 수 없는 출생의 비밀이 있다

그것을 알고 난 저 섬은

누구의 형제도 될 수 없다

다만 하늘을 뒤덮는 잿빛 날개의 붕새 한 마리가
다섯 개인지 여섯 개인지 알 수도 없게
재빠르게 숭덩숭덩
검은 알을 빠뜨리고 가는 것을 바라볼 뿐이다

 

 

 

# 천수호 시인은 1964년 경북 경산 출생으로 명지대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아주 붉은 현기증>, <우울은 허밍>,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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