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이별 - 황학주 정해진 이별 - 황학주 그 길에 들어가는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 밤늦도록 빗속에 천가죽처럼 묵직하게 처진 고목들이 줄 서 있고 그 길에 가는 자를 못 비추는 무뚝뚝한 등이 서 있습니다 헌 세상 같은 밤이 차고에 들고 얼룩이 배어 있는 이마를 나는 핸들 위에 가만히 찍습니다 짧지만 진.. 한줄 詩 2014.11.29
깨어지기 쉬운 - 최서림 깨어지기 쉬운 - 최서림 한때는 기타 치며 흥얼거리던 팝의 사랑노래가 점차 남의 노래로 들리는 나이, 초등학교 때 라디오로 듣던 뽕짝이 드디어 내 노래로 더는 촌스럽지 않은 노래로 살갗을 파고드네 바람처럼 지나가는 소소한 농담에도 피가 서늘하게 굳어지는 늙은 조개처럼 무뎌진.. 한줄 詩 2014.11.29
괄호 안의 생 - 최대희 괄호 안의 생 - 최대희 유골의 추스름을 보는 것은 흔치 않은 체험 그분은 신장이 무척 크셨나보다 육체와 영혼은 백여 년이 흘렀어도 분리될 수 없는지 조심스런 손놀림으로 할아버지는 그분의 생전 이야기를 주섬주섬 건져 올리셨다 좋은 것, 맛난 것에 혀를 굴리며 쓴 것, 캄캄한 곳에 .. 한줄 詩 2014.11.29
그는 나의 무엇일까 - 홍윤숙 그는 나의 무엇일까 - 홍윤숙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엄습해오는 정체 모를 그림자, 아니 그림자 같은 물체 하나 형상은 있으나 얼굴은 없으니 사람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다가오는 그 덩치는 오동나무 크기만큼 우람하다 항상 내 주위를 맴돌며 안개 같은 포승줄로.. 한줄 詩 2014.11.29
상처가 꽃을 보다 - 조길성 상처가 꽃을 보다 - 조길성 사람들은 너를 초롱꽃이라 한다 하지만 나는 네 이름을 알지 못하겠다 너는 꽃도 아니고 초롱꽃은 더욱 아니며 끝 간 데를 알 수 없는 푸른 하늘이며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의 침묵이며 그 침묵 속을 지나는 물고기의 말 없는 눈빛 속에 있으며 내가 종각에서 .. 한줄 詩 2014.11.28
그곳이 어디쯤일지 - 강인한 그곳이 어디쯤일지 - 강인한 엷은 새벽빛이 흘러와 벽에서 4호 액자가 떠오른다 삼십 년 전 전라도 어느 개울과 산이 날것으로 숨쉬다가 젊은 화가의 선과 색채를 입고 이 작은 액자 속으로 들어온 것이니 그 곳이 어디쯤일지 내 어린 날 어느 겨울이었으리 곤죽이 된 논바닥에 고무신 푹.. 한줄 詩 2014.11.24
희망은 아름답다 - 정호승 희망은 아름답다 - 정호승 창은 별이 빛날 때만 창이다 희망은 희망을 가질 때만 희망이다 창은 길이 보이고 바람이 불 때만 아름답다 희망은 결코 희망을 잃지 않을 때만 아름답다 나그네여, 그래도 이 절망과 어둠 속에서 창을 열고 별을 노래하는 슬픈 사람이 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 한줄 詩 2014.11.23
솔직해집시다 - 김민정 솔직해집시다 - 김민정 사정 후 덜 싸맨 콘돔을 창에 던지는 건 그 남자의 오랜 투구법 창을 만나 창에 안겨 창을 더럽히는 계란 흰자 축농증의 콧물로 마사지하는 건 그 여자의 오랜 미용법 남자의 어깨 근육이 늘어났다 줄어드는 만큼 오그라들었다 벌어지는 여자의 모공 속에서 싹이 .. 한줄 詩 2014.11.21
나의 통증엔 별이 없다 - 고재종 나의 통증엔 별이 없다 - 고재종 내가 잠 못 이루는 밤에, 라고 쓰면 딴엔 화사한 것이 적지 않던 너는 별이 빛나는 밤에,라고 번역하던 창가였다. 창문을 열면 이제 별 한 톨 없이 고속도로의 굉음만 쏟아져 들어오는 밤, 통증 때문에 침대 끝에 나앉았는데 호랑이띠인 너는 무슨 으르렁거.. 한줄 詩 2014.11.17
오늘, 쉰이 되었다 - 이면우 오늘, 쉰이 되었다 - 이면우 서른 전, 꼭 되짚어 보겠다고 붉은 줄만 긋고 영영 덮어버린 책들에게 사죄한다 겉 핥고 아는 체 했던 모든 책의 저자에게 사죄한다 마흔 전, 무슨 일로 다투다 속맘으론 낼, 모레쯤 화해 해야지 작정하고 부러 큰 소리로 옳다고 우기던 일 아프다 세상에 풀지 .. 한줄 詩 2014.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