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상처가 꽃을 보다 - 조길성

마루안 2014. 11. 28. 20:58



상처가 꽃을 보다 - 조길성



사람들은
너를 초롱꽃이라 한다
하지만 나는 네 이름을 알지 못하겠다
너는 꽃도 아니고
초롱꽃은 더욱 아니며
끝 간 데를 알 수 없는 푸른 하늘이며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의 침묵이며
그 침묵 속을 지나는 물고기의
말 없는 눈빛 속에 있으며 내가
종각에서 탑골공원 쪽으로 걸어갈 때
시끄러운 자동차 물결 속에 있으며
그 물결 찢어지며 문득
사진기 후레쉬 불빛처럼 터지는 공간
내 어린 날의 새카만 눈동자이며
그 눈에 흐르던 맑디맑은 눈물이며
나 이 세상 지나간 뒤에
나를 기억하는 사람 모두 들꽃으로 피어난 뒤에
그 위에 내리는 따스한 단비의 기나긴 이름인 것을
반갑다 네 이름을 알게 되어



*시집, 징검다리 건너, 문학의전당








마당이 깊어질 때 - 조길성



아무도 없다
잠자리 장대 끝을 건드리다 가고
호박덩굴 아래로 땅강아지 지나더니
애기 신발 하나 베개 삼아 바둑이 잔다
바람도 없다
구름도 없이 하늘은
그 커다란 푸른 눈으로 마당을 바라본다
얼마나 흘렀을까
참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마당엔 아무도 없고
나는 아직 대문 앞을 서성인다






# 가을이 시 읽기 좋은 계절이라 했지만 읽을 만한 좋은 시가 없으면 그것도 말짱 헛 일이다. 아직 떠나지 못한 가을의 파편들이 곳곳에 박혀 마음을 스산하게 할 때 쓸쓸함이 묻어나는 싯구에서 묘한 슬픔을 느낀다. 숨어 있는 시인을 발견한 기쁨이 크다. 반갑다. 이 시인을 알게 되서,,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괄호 안의 생 - 최대희  (0) 2014.11.29
그는 나의 무엇일까 - 홍윤숙  (0) 2014.11.29
그곳이 어디쯤일지 - 강인한  (0) 2014.11.24
희망은 아름답다 - 정호승  (0) 2014.11.23
솔직해집시다 - 김민정  (0) 2014.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