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괄호 안의 생 - 최대희

마루안 2014. 11. 29. 09:42



괄호 안의 생 - 최대희



유골의 추스름을 보는 것은
흔치 않은 체험
그분은 신장이 무척 크셨나보다
육체와 영혼은
백여 년이 흘렀어도
분리될 수 없는지
조심스런 손놀림으로 할아버지는
그분의 생전 이야기를 주섬주섬
건져 올리셨다
좋은 것, 맛난 것에 혀를 굴리며
쓴 것, 캄캄한 곳에 등을 돌리던
아름다움의 집착인 육체는 사라지고
요점 정리한 듯 남아 있는 뼈들을 본다
자라나는 소나무의 그늘에
봉분 속 기억은 조금씩 지워질 것이고
봉분 위에 새로 집 지은
잔디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허공에 몸 흔들며 살아가겠지만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원형대로 누워 있는
유골 앞에서 성호를 긋고 있는 나는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씹히지 않는 생을 살고자 엄숙해지며
가쁜 심호흡을 한다.



*시집, 그리움은 오솔길에 있다, 연인








늑대의 울음 - 최대희



동틀 무렵 늑대의 울음소리가
나를 부동 자세로 얼어붙게 했다
순간, 이승을 떠난
아버지의 품이 그리워
소름이 돋았다
情이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숨 못 쉬게 하는 고통인지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위독하단 전화를 받고
훌쩍이는 사내, 그는
어머니의 영원한 막내아들
중년이다, 그가
갑자기 일곱 살의 어린아이로
마당을 뛰어다니다 배가 고프다며
엄마의 젖가슴을 더듬는다
악을 쓰며 싸우던 엄마는
어화둥둥 내 새끼
많이 먹어라 봄날의 백목련처럼
뽀얀 물고구마를
쟁반 가득 깎아 놓고


울음을 멈추고 주섬주섬 옷을 걸친
사내가 걸어나간다
현관문이 열리며 찬 공기가
빚쟁이들처럼 안으로 쳐들어왔지만
늑대의 울음처럼
서늘하진 않았다.





# 최대희 시인은 1958년 경기도 평택 출생으로 경기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숙명여대 경영대학원 미용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1999년 <문학세계>로 등단했다. 본명이 최정희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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