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개한테 배우다 - 복효근

개한테 배우다 - 복효근 동네 똥개 한 마리가 우리집 마당에 와 똥을 싸놓곤 한다 오늘 마침 그 놈의 미주알이 막 벌어지는 순간에 나에게 들켜서 나는 신발 한 짝을 냅다 던졌다 보기 좋게 신발은 개를 벗어나 송글송글 몽오리를 키워가던 매화나무에 맞았다 애꿎은 매화 몽오리만 몇 개 떨어졌다 옆엣놈이 공책에 커다랗게 물건 하나를 그려놓고 선생 자지라고 써놓은 것을 보고 킥킥 웃었다가 폐타이어로 만든 쓰레빠로 괜한 나만 뺨을 맞은 국민학교 적이 생각나 볼 붉은 매화가 얼마나 아팠을까 안쓰러웠다 나도 모름지기 국가에서 월급 받는 선생이 되었는데 오늘 개한테 배운 셈이다 신발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라고, 매화가 욕을 할 줄 안다면 저 개 같은 선생 자지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복효근 시집, 마늘 촛불, 심지 꽃 ..

한줄 詩 2014.04.16

어느 비린 저녁 일요일 - 이병률

어느 비린 저녁 일요일 - 이병률 이십 년 넘게 다니는 지하 목욕탕에 괄호를 씻으러 갔다 괄호를 닦는 동안 하나둘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달랑 혼자 남은 목욕탕엔 어느새 한기가 들어와 사방을 둘러본다 시계를 보다 미안한 마음으로 서둘러 나오는데 때밀이 아저씨가 손을 잡아끌며 소주 한잔 하고 가라한다 옷이라도 주워입고 앉겠다 했더니 다 안 입고 있노라고 옷 입으면 반칙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옷장 뒤 연기 속에서 고기를 굽는 벌거숭이 사내들 순식간에 물비린내와 비누 냄새와 괄호를 잡아먹는 저 현란한 고기 냄새들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다가 재차 민망한 기분이 되어 옷이라도 입자 했더니 냄새 밴다고 다 먹고 욕탕에 들어가 씻으면 그만이라는 이발사 담뱃불을 붙이며 방귀를 뀌는 이도 있었고 아랫도리가 늘어질 대로 늘어져 ..

한줄 詩 2014.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