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바람을 신으로 모신 자들의 경전 - 이은규 추운 바람을 신으로 모신 자들의 경전 - 이은규 어느 날부터 그들은 바람을 신으로 여기게 되었다 바람은 형상을 거부하므로 우상이 아니다 떠도는 피의 이름, 유목 그 이름에는 바람을 찢고 날아야 하는 새의 고단한 깃털 하나가 흩날리고 있을 것 같다 유목민이 되지 못한 그는 작은 침.. 한줄 詩 2015.10.19
눈물의 오후 - 박정만 눈물의 오후 - 박정만 눈물이 흔해서 괴로왔다. 날 기울면 창 밖에 어둠이 지고 어둠이 지고 나면 때 없이 눈물이 소금처럼 밀려왔다, 소금처럼. 거룩하고 거룩한 세월, 한 목숨을 견디지 못하고 매양 눈물이 오고 어느 때쯤이었을까, 죄와 불면이 무섭게 자라나는 어두운 밤에 나는 슬픔.. 한줄 詩 2015.10.19
가을의 빛 - 장석남 가을의 빛 - 장석남 누군가 울먹이며 지나갔는가 일개 소대의 코스모스들이 허리마다 올올이 바람을 감고 서서 이제 더 오래 못 서 있을 빛을 내내 빛내고 있었으니 이 빛깔들은 이후 어느 길목을 돌아 어디로 종종이며 흐를 것인가 그것이 눈물겨운 것은 앞치마를 두르고 저녁밥을 끓이.. 한줄 詩 2015.10.19
이 가을에 - 박두규 이 가을에 - 박두규 가을을 맞이하는 이파리들 그 마음들은 어떨까 어떤 색으로든 자신의 색깔을 결정지어야 하고 이제는 지상으로 내려와야 하는 것을 가을을 맞아 나는 무슨 색깔로 매달려 있는 지가 궁금하다 연노랑에 선다홍의 고운 물결을 이루었는지 똥색으로 꼬실라진 단풍이 되.. 한줄 詩 2015.10.19
막차는 없다 - 송경동 막차는 없다 - 송경동 비 그치고 막차를 기다리고 선 가리봉의 밤 차는 오지 않고 밤바다 쪽배마냥 작은 리어카를 끌고 온 한 노인이 내 앞에 멈춰 선다 그이는 부끄럼도 없이 휴지통을 뒤져 내가 방금 먹고 버린 종이컵이며 빈 캔 따위를 주워 싣는다 가슴 한 가득 안은 빈 캔에서 오물이 .. 한줄 詩 2015.10.13
가끔은 宥罪한 과거가 보인다 - 고철 가끔은 宥罪한 과거가 보인다 - 고철 문 밖 출입이 두려운 요즘도 가끔은 유죄한 과거가 보이지 갈기 부러진 허공 저 편 실근한 실체들은 잘 보이지 않는 법 홍역질에 지친 쉽게 얻은 망각병처럼 사들 듯 한 산바람만 깡마르게 술렁이는 마른 눈 육중히 쌓인 최북단 서부전선 금 그어진 산.. 한줄 詩 2015.10.12
나이를 먹는 슬픔 - 김용락 나이를 먹는 슬픔 - 김용락 뜨락에 서 있는 나무를 보면서 문득 세월이 흐르고 한두 살씩 나이를 더 먹는 것이 슬픈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잎이 청정한 나무처럼 우리가 푸르고 높은 하늘을 향해 희망과 사랑을 한껏 펼 수 없을 만큼 기력이 쇠잔하고 영혼이 늙어서가 아니다 또.. 한줄 詩 2015.10.11
어머니 - 반칠환 어머니 5 - 반칠환 -검버섯 산나물 캐고 버섯 따러다니던 산지기 아내 허리 굽고, 눈물 괴는 노안이 흐려오자 마루에 걸터앉아 먼산 바라보신다 칠십 년 산그늘이 이마를 적신다 버섯은 습생 음지 식물 어머니, 온몸을 빌어 검버섯 재배하신다 뿌리지 않아도 날아오는 홀씨 주름진 핏줄마.. 한줄 詩 2015.10.09
이만 년 후의 가을 - 강윤후 이만 년 후의 가을 - 강윤후 인류가 사라진 세상에 낙엽이 지고 소름 돋도록 맑은 하늘 아래 새로 지구를 떠맡은 종족의 사랑과 평화가 실하게 영근다. 새 종족이 가꾼 열매는 인류가 끝끝내 이루지 못한 꿈과 희망, 그들은 인류의 본보기 삼아 싸움의 불씨가 되는 편가름을 꺼렸고 뺏고 .. 한줄 詩 2015.10.08
도반(道伴) - 이성선 도반(道伴) - 이성선 벽에 걸어놓은 배낭을 보면 소나무 위에 걸린 구름을 보는 것 같다 배낭을 곁에 두고 살면 삶의 길이 새의 길처럼 가벼워진다 지게 지고 가는 이의 모습이 멀리 노울 진 석양으로 하늘 속에 무거워도 구름을 배경으로 서 있는 혹은 걸어가는 저 삶이 진짜 아름다움인 .. 한줄 詩 2015.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