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자화상 - 류시화

자화상 - 류시화 행성의 북반구에서 절반의 생을 보냈다 곧 일생이 될 것이다 서른 살 이후 자살을 시도한 적 없다, 아 불온한 삶 사랑은 언제나 벼랑에 서 있었다 나를 만난 사람은 다 떠나갔다 가족력은 방랑이었다 아버지는 농부였으나 자식은 몇 대 위 유목의 혈통을 물려 받았다 새벽부터 길 나서 부지런히 걸었지만 아직 이만큼밖에 오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계속해서 가면 어딘가에 도달하리라는 것이 밑도 끝도 없는 사상이었다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많은 예술가들이 그러했고, 정신이 아주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었으므로 그 생각은 아직 유효하다 적들이 사라진 세상 그래서 모두가 모두를 적으로 만드는 세상을 떠나 갠지스 강가에 앉아 있곤 했다 모국어의 영토에 산수유 피었는가 그려 보면서 화장터..

한줄 詩 2015.11.22

까마귀, 둥지 속으로 날아든 새 - 서규정

까마귀, 둥지 속으로 날아든 새 - 서규정 여기가 대체 어디야 멀쩡한 사람 주눅 들어 발 저리게 하고 방광에 오줌이 가득 차도 시원스럽게 눌 수 없는 곳 가사상태의 환자들만 득시글득시글 우리 모두 몰려 왔는데, 아는 사람은 없고 휴대폰만 있어 걸려오지 않는 전화에도, 번지는 통증 쩌릿쩌릿 휴대폰은 심장이 된지 이미 오래다 기기가 울린다는 것, 그것이 그리 가슴 아파 줄무늬 시트처럼 시간이 흘렀던가 삼등열차 복도와 같이 북적대는 입원실 입구에 눈에 번쩍 띄는 낙서 한 줄 불치병일수록 더욱 좋다, 뉴 타운의 팻션 사람은, 환자복을 입고선 누구나 그지없이 착하고 누웠다 일어설 땐 당연히 흔들림을 쥐어 잡듯이 찌륵 찌르르 진동음은 받지 않아야 더 깊고 길게 울린다 *시집, , 작가세계 청춘 - 서규정 눈 깜빡할..

한줄 詩 2015.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