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눈물의 오후 - 박정만

마루안 2015. 10. 19. 23:11



눈물의 오후 - 박정만

 

눈물이 흔해서 괴로왔다.
날 기울면 창 밖에 어둠이 지고
어둠이 지고 나면 때 없이
눈물이 소금처럼 밀려왔다, 소금처럼.


거룩하고 거룩한 세월,
한 목숨을 견디지 못하고 매양 눈물이 오고
어느 때쯤이었을까,
죄와 불면이 무섭게 자라나는 어두운 밤에
나는 슬픔의 그물로 피륙을 짰다.


아주 잘 짰다.
옷에는 물방울 무늬의 사랑이 저질러지고
때묻은 내의에는 마구 서캐가 슬어
내 더러운 피의 근원을 앞질러 갔다.
이제 사랑도 알아보게 축(縮)이 났다.
마음은 건성 마른 풀잎에 눕고
내 생의 우기를 재촉하는 바람만 불어
초로(草露)같은 한 목숨을 쓰러뜨렸다.


돌림병처럼 어지러운 세상,
세상은 때 없이 오후의 햇발 속에 기울어지고
나는 눈물이 둥그러운 기름처럼
어지럽게 맨땅을 흘러가는 것을 보았다.


요즈음은 왜 이렇게 눈물이 흔한지 몰라.

 


*박정만 시전집, 다시 눈뜬 아사달, 외길사


 





 

저 가을 속으로 - 박정만


 
사랑한다, 사랑한다,
눈부신 꽃잎만 던져놓고 돌아서는
들끓는 마음 속 벙어리같이.


나는 오늘도
담 너머 먼 발치로 꽃을 던지며
가랑잎 떨어지는 소리를 낸다.


내사 짓밟히고 묻히기로
어차피 작정하고 떠나온 사람,
외기러기 눈썹줄에 길을 놓아
평생 실낱 같은 울음을 이어갈 것을.


사랑의 높은 뜻은 비록 몰라도
어둠 속 눈썰미로 길을 짚어서
지나는 길섶마다
한 방울 청옥 같은 눈물을 놓고 갈 것을.


머나먼 서역 만리
저 눈부신 실크로드의
가을이 기우뚱 기우는 저 어둠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