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낭만에 대하여 - 나호열

낭만에 대하여 - 나호열 낭만이라는 찻집은 바닷가에 있다 방파제 끝까지 가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문은 항상 열려 있다 대부분 서서 있게 마련이지만 음악은 늘 신선하다 적당한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처럼 테이프는 조금 늘어져 있다 며칠씩 묵고 가는 사람은 없다 밀물이 오면 지워지는 발자국 몇 개 남기고 갯바위에 붙은 따개비를 헤적거리다가 추억 속에 노을을 엎지르고 황급히 길을 되짚는다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끝이 보이지만 빈 그물 속에 끌려 들어온 바다를 버리지 못해 한 평생 끌탕을 하는 어부들에게 수평선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방파제 끝까지 가지 않지만 방파제 끝이 바다의 시작인 것을 낭만이라는 찻집은 바닷가에 없다 *시집, 눈물이 시킨 일, 시학사 운동 후기 - 나호열 -노동이 너를 자유롭게..

한줄 詩 2015.11.08

늦가을 볕은 늦가을도 어쩔 수 없어 - 박승민

늦가을 볕은 늦가을도 어쩔 수 없어 - 박승민 늦가을 볕의 긴 손가락이 허공을 가만히 감았다 놓았다 하는 사이 뒷산 갈참나무숲에는 누가 죽어 가는지 흙이 붉어 가는데 늦가을 볕은 늦가을도 어쩔 수 없어 장수반점을 지나 흥농종묘를 지나 고추밭에 든 추월댁 체육복 등에 기대인 채 둘은 한참 동안 따사로운데 늦가을 볕은 늦가을도 잡을 수 없어 늦가을 볕은 늦가을과 함께 자꾸 늙어가서 수숫단 꼭대기 잠자리 마지막 날개 위에서 한 줌 골고루 금광(金光)으로 번진 뒤에야 턱, 숨을 내려놓는데 체육복 등엔 어둠이 파스처럼 한 장 붙는데 *시집, 지붕의 등뼈, 푸른사상사 너에게 - 박승민 나와 동승한 너는 불운했다 살아갈수록 희망은 우리의 손끝을 벗어났으니 강물을 얼리고 난 찬바람이 우리의 무량한 가슴으로 밀려와 삶은..

한줄 詩 2015.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