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볕은 늦가을도 어쩔 수 없어 - 박승민
늦가을 볕은 늦가을도 어쩔 수 없어 - 박승민 늦가을 볕의 긴 손가락이 허공을 가만히 감았다 놓았다 하는 사이 뒷산 갈참나무숲에는 누가 죽어 가는지 흙이 붉어 가는데 늦가을 볕은 늦가을도 어쩔 수 없어 장수반점을 지나 흥농종묘를 지나 고추밭에 든 추월댁 체육복 등에 기대인 채 둘은 한참 동안 따사로운데 늦가을 볕은 늦가을도 잡을 수 없어 늦가을 볕은 늦가을과 함께 자꾸 늙어가서 수숫단 꼭대기 잠자리 마지막 날개 위에서 한 줌 골고루 금광(金光)으로 번진 뒤에야 턱, 숨을 내려놓는데 체육복 등엔 어둠이 파스처럼 한 장 붙는데 *시집, 지붕의 등뼈, 푸른사상사 너에게 - 박승민 나와 동승한 너는 불운했다 살아갈수록 희망은 우리의 손끝을 벗어났으니 강물을 얼리고 난 찬바람이 우리의 무량한 가슴으로 밀려와 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