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어머니 - 반칠환

마루안 2015. 10. 9. 08:36



어머니 5 - 반칠환
-검버섯



산나물 캐고 버섯 따러다니던 산지기 아내
허리 굽고, 눈물 괴는 노안이 흐려오자
마루에 걸터앉아 먼산 바라보신다
칠십 년 산그늘이 이마를 적신다
버섯은 습생 음지 식물
어머니, 온몸을 빌어 검버섯 재배하신다
뿌리지 않아도 날아오는 홀씨
주름진 핏줄마다 뿌리내린다
아무도 따거나 훔칠 수 없는 검버섯
어머니, 비로소 혼자만의 밭을 일구신다



*시집,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시와시학사








아버지 1 - 반칠환



풍으로 떨던 아버지, 나 하나도 슬프지 않았네
내 나이 다섯 살, 지팽이 짚은 아버지 허리춤 풀어주며
오줌 시중 들어도 나 하나도 가엾지 않았네
어머니는 일하러 나가는 사람, 아버지는 그저 방 안에 있는 사람
이따금 콜록거리는 기침과 긴 한숨이 문턱을 넘어왔지만 나 무시했네
나를 사로잡은 건 그보다 능구렁이나, 다람쥐 울음소리였다네
어느 날 아버지 잠자리 꼬리 밀짚 꿰어 시집 보내던 나를 불렀네
막내야 산내끼 좀 가져다 다오-
고무신 꿴 아버지 댓돌 아래 나오시네
아부지, 산내끼 여기
가까스로 헛간으로 오신 아버지, 새끼줄로 목을 매시네
나 말리지 않았네
발버둥치던 아버지, 새끼줄이 끊어지자 청뜰에 떨어져 피투성이가 되었네
나, 그제서야 앙 하고 울었네


아버지는 그 후로 일 년을 더 사셨네






# 반칠환 시인은 1964년 충북 청주 출생으로 1989년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누나야>, <내게 가장 가까운 신, 당신>, <웃음의 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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