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지금만은 그들을 - 손월언

지금만은 그들을 - 손월언 지금만은 그들을 잊어도 좋으리 지구에 사는 행복감에 젖어 불타는 노을빛에 몸 붉은 구름들의 이름을 불러봐도 좋으리 거대한 고인돌 구름은 무거워 천천히 동쪽으로 가고 맘모스 갈비뼈 구름은 어느 순간 흩어져 멸종되고 게바라의 베레모는 검은색이었다가 붉은색으로 변한다 가슴 깊이 억누른 자유 아닌 것들을 지금만은 잊어도 좋으리 지구에 사는 행복감에 젖어 저 장엄한 붉은색을 온몸에 물들여도 좋으리 구름 되리, 구름 되리, 구름이 되어도 좋으리 *시집. 마르세유에서 기다린다, 문학동네 노을 A - 손월언 오늘 해는 도시의 복잡한 전깃줄처럼 펼쳐진 구름을 거느렸다 빛은 부드럽고 하늘은 여러 가지 색깔을 입었다 붉은 색 사이에 끼쳐 있는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옥색을 본다 갈매기도 바람결에 ..

한줄 詩 2015.09.15

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 - 이병률

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 - 이병률 늦은 밤 술집에서 나오는데 주인 할머니 꽃다발을 놓고 간다며 마늘 찧던 손으로 꽃다발을 끌어안고 나오신다 꽃다발에서 눈을 떼지 못한 할머니에게 이 꽃다발은 할머니한테 어울리네요 가지세요 할머니는 한사코 가져가라고 나를 부르고 나는 애써 돌아보지 않는데 또 오기나 하라는 말에 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 꽃 향은 두고 술 향은 데리고 간다 좁은 골목은 식물의 줄기 속 같아서 골목 끝에 할머니를 서 있게 한다 다른 데 가지 말고 집에 가라는 할머니의 말 신(神)에게 가겠다고 까부는 밤은 술을 몇 잔 부어주고서야 이토록 환하고 착하게 온다 *이병률 시집, 찬란, 문학과지성 일말의 계절 - 이병률 아무도 밟지 말라고 가을이 오고 있다 무엇이든 훔치려는 손을 내려놓으..

한줄 詩 2015.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