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최후의 늑대 - 최금진

마루안 2015. 11. 5. 08:12



최후의 늑대 - 최금진



그의 목에는 톱날 같은 소름,
바람이 불 때마다
아흐! 살고 싶어 갈기가 돋는다


사타구니 사이로 달랑거리는
홀쭉한 불알 두 쪽 꺼내놓고 앉아
그는 허기진 입을 쩝쩝 다신다
어쩌다 따뜻한 가죽 코트의 무리에서 떨어져나와
곡소리 같은 노래를 공중에 띄운다


그러나 짖어대는 건 울음이 아니다


그는 젖을 혓바닥을 내밀어 눈알을 씻는다
얼굴 속에 박힌 두개골이 훤하게 얼비치는 달밤


개 같은 비루함의 날들은 물어뜯지 못하고
뭉턱뭉턱 털갈이하듯 달빛이 쏟아진다
제 꼬리를 물고 춤추는 달무리
그 둥근 울타리들이 만드는 경계의 바깥에서
그는 떠돌아다닌다


허옇게 털가죽을 뒤집어쓰고
자작나무 잎사귀들은 푸른 발톱을 반짝거린다
아흐!
살고 싶어 살기가 돋는다


굶주린 뱃속에 허기가 바닷물처럼 들끓어오르고
그의 눈알은 자꾸 붉어진다
아무데도 정착하지 못한다


아흐! 그런데도 짖어대는 건 울음이 아니다



*시집, 황금을 찾아서, 창비








장미의 내부 - 최금진



벌레 먹은 꽃잎 몇 장만 남은
절름발이 사내는
충혈된 눈 속에서
쪼그리고 우는 여자를 꺼내놓는다


겹겹의 마음을 허벅지처럼 드러내놓고
여자는 가늘게 흔들린다


노을은 덜컹거리고
방안까지 적조가 번진다


같이 살자 살다 힘들면
그때 도망가라


남자의 텅 빈 눈 속에서
뚝뚝, 꽃잎이 떨어져 내린다






# 최금진의 시를 읽으면 배워서 쓴 시가 아니라 겪어서 나오는 시라는 생각이 든다. 불량 인간이 되기 좋은 조건을 잘 이겨낸 삶은 이렇게 아름답다. 뜬구름 잡는 말랑말랑한 시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이런 시가 돋보이는 이유다. 시인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