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별이 지는 날 - 박남준

별이 지는 날 - 박남준 어디 마음 둘 곳 없습니다 그가 떠나서만이 아니고요 산다는 것이 서러웠습니다 빨래를 널듯 내 그리움을 펼쳐 겨울 나뭇가지에 드리웠습니다 이제 해 지면 깃발처럼 나부끼던 안타까움도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을까요 어디 마음 둘 곳 없습니다 별이 뜨고 별 하나 지는 밤 언제인가 오랜 내 기다림도 눈 감을 테지요 *시집, 풀여치의 노래, 푸른숲 겨울비 - 박남준 먼 바람을 타고 너는 내린다 너 지나온 이 나라 서러운 산천 눈 되지 못하고 눈 되지 않고 차마 그 그리움 어쩌지 못하고 감추지 못하고 뚝뚝 내 눈앞에 다가와 떨구는 맑은 눈물 겨울비, 겨울비 우는 사람아 # 박남준 시인은 1957년 전남 법성포 출생으로 전주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4년 지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

한줄 詩 2016.09.18

내가 아주 잘 아는 이야기 4 - 여태천

내가 아주 잘 아는 이야기 4 - 여태천 모든 잊힌 사람은 뒷모습으로 사라진다. 헤어지기 전에 들리는 새소리는 고독하고 이유가 조금씩 자랄 때 우리의 자세는 침묵이다. 괜찮을 거야, 라는 한마디처럼 저녁은 언제나 이해할 수 없는 풍경 서가에 꽂힌 아슬아슬한 책 한 권 밤새 아무 일 없다는 그것 세상은 그렇게 조용해진다. 우리는 아주 잠시 동안 없어도 좋은 사라진 페이지 *시집, 저렇게 오렌지는 익어 가고. 민음사 마지막 목소리 - 여태천 자주 해가 지는 시간이 찾아와서 나는 무서웠다. 어디쯤에서 저 끝은 시작되었을까. 안녕 잘 지내니, 라는 말을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쓰는 종이는 종이대로 글씨는 글씨대로 이미 어둠에 하나씩 발을 들여놓고서 나는 자주 해가 지는 시간을 기다려 저 어둠의 음질(音質)을 기억하..

한줄 詩 2016.09.12

엄마 걱정 - 기형도

엄마 걱정 -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 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걸음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비가 2 - 기형도 -붉은 달 1 그대, 아직 내게 무슨 헤어질 여력이 남아 있어 붙들겠는가. 그대여, X자로 단단히 구두끈을 조이는 양복 소매끈에서 무수한 달의 지느러미가 떨어진다. 떠날 사람은 떠난 사람, 그대는 천국으로 떠난다고 장기 두는 식으로 용감히 떠난다고 짧게 말하였다. 하늘나라의 달. 2 너는 이내..

한줄 詩 2016.09.10

동사서독(東邪西毒) - 김유석

동사서독(東邪西毒) - 김유석 유혈목이가 삼키던 두꺼비를 꾸역꾸역 게워내고 있다. 독으로도 삼키지 못하는 독 삼킬 때보다 더 크게 아가리를 벌리고 몸에 두른 곡선을 ㄱ자로 마디마디 꺾어가며 두꺼비의 윤곽을 조금씩 목구멍 쪽으로 밀어 올린다. 독으로 삼킨 독 잘못 삼킨 먹이를 토해내는 듯하지만, 실은 두꺼비는 독이 있다, 는 것을 알고 삼킨 것 독으로 맞서는 독 자기방어의 수단으로 달아남을 먼저 몸에 익힌 두꺼비가 기꺼이 잡아먹힘을 선택한 까닭을 배우게 된 유혈목이는 두꺼비 몸에 주입시킨 자신의 독까지 뱉어내고는 마른 꽃대처럼 뻣뻣해져버린다. 또 다른 독으로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독 *시집, 놀이의 방식, 문학의전당, 2013년 감자 - 김유석 나는 감자라 불리는 감자다. 나는 쥐뿔이자 감자 먹이는 주먹이다..

한줄 詩 2016.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