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내가 아주 잘 아는 이야기 4 - 여태천

마루안 2016. 9. 12. 05:32

 

 

내가 아주 잘 아는 이야기 4 - 여태천


모든 잊힌 사람은
뒷모습으로 사라진다.

헤어지기 전에 들리는
새소리는 고독하고
이유가 조금씩 자랄 때
우리의 자세는 침묵이다.

괜찮을 거야, 라는 한마디처럼
저녁은 언제나 이해할 수 없는 풍경

서가에 꽂힌 아슬아슬한 책 한 권
밤새 아무 일 없다는 그것
세상은 그렇게
조용해진다.

우리는 아주 잠시 동안
없어도 좋은
사라진 페이지


*시집, 저렇게 오렌지는 익어 가고. 민음사


 

 



마지막 목소리 - 여태천


자주 해가 지는 시간이 찾아와서
나는 무서웠다.
어디쯤에서 저 끝은 시작되었을까.
안녕 잘 지내니, 라는 말을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쓰는
종이는 종이대로
글씨는 글씨대로
이미 어둠에 하나씩 발을 들여놓고서
나는 자주 해가 지는 시간을 기다려
저 어둠의 음질(音質)을 기억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야
자주 해가 지는 시간이 와도
그래 이제는 괜찮아, 라는 말을
별 뜻 없이 쓸 수 있게 되고
조금씩 밝아 오는 쪽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때쯤에서야
괜찮아 괜찮아
사라지지 않고 반복되는 컴컴한 목소리들
시간은 시간대로
감정은 감정대로
글씨는 글씨대로
괜찮은 거다.
모두가 괜찮은 거다.




*自序

그는 주머니 가득 돌을 채우고
바다로 걸어 들어갔다.
그가 증오를 품지 않았다면
그건 무슨 말이어도 변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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