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고슴도치의 고백 - 이선이 늙은 고슴도치의 고백 - 이선이 寒天 너머 언江, 그걸 건너기가 쉬운 일은 아닐세 연산홍빛 눈망울에 생을 내걸고 서리서리 깎아지른 산길 질러질러 내달리면 어디에도 낭떠러지인 돌산 그게 생이었던가 싶네 그려 상처에서 돋아나는 가시를 경멸했지만 그러나 온몸이 가시로 뒤덮힌 나.. 한줄 詩 2016.09.06
일몰의 기억들 - 김경미 일몰의 기억들 - 김경미 한사코 감췄던 히아신스 빛깔의 어린 초경날, 맹장염인가 엄마, 처음으로 동네 병원에 데려갔다 의사 웃었다 지독히 못생겨서 사람들이 보기만 하면 자꾸 비웃는 거라고 생각했다 거듭무늬라는 문법용어를 발견한 날, 방송국 화장실 청소아줌마는 여자탤런트로 .. 한줄 詩 2016.09.06
명의를 찾아서 - 김연종 명의를 찾아서 - 김연종 아침 일찍 서둘러도 내 몸은 늘 촉박하다 출근길, 내부 순환도로처럼 꽉 막힌 체증을 뚫기 위해 푸른 신호등 앞 속 편한 내과로 질주한다 그리고 다시 굿모닝 이비인후과에서 한사코 소통을 거부하는 절벽의 귀를 뚫어 보지만 자명종 같은 나의 아침은 공명하지 .. 한줄 詩 2016.09.04
맨드라미가 있는 뜰 - 송종규 맨드라미가 있는 뜰 - 송종규 시간이 이룬 겹겹의 구릉들 구릉 아래는 다시 벼랑, 짐승의 아가리. 모래로 꽉 찬 시계 시계를 중심으로 초승달 같은 호수가 숨어 있고 수면을 경계로 대칭을 이룬 갖가지 무늬의 꽃과 모래톱들 그리고, 빽빽한 분홍빛 루머들 많은 생각들이 맨드라미 머리 위.. 한줄 詩 2016.09.03
정말 살려면 - 황학주 정말 살려면 - 황학주 꾸르륵 우는 새가 몇 마리, 뭉쳐 있다가 하단으로 깨끗한 뱃속을 흐르고 있었다. 일요일, 털이 다 빠진 깊은 상심이 가다가다 막막한 벽에 대고 뒤통수가 까만 울음장치처럼 자기 머리를 건드리며 숨쉬고 있었다. 창 밖엔 황토 바닥 고개를 지나 눈송이 알들이 몇 단.. 한줄 詩 2016.09.01
둥글과 완벽한 - 최서림 둥글과 완벽한 - 서림 -이 세상의 방 한 칸 어느 해와 마찬가지로 고향에 가지 않거나 못 가는 날, 앞집 서울슈퍼에서 사과를 샀습니다. 어릴 적 60년대 홍옥이 그리워 그중 빨간 걸로 한 놈 집었습니다. 하루 종일 햇볕도 들지 않는 북쪽 모퉁이 내 방에서 그놈을 가만히 깨물어봅니다. 잡.. 한줄 詩 2016.08.30
먼지의 이력서 - 배용제 먼지의 이력서 - 배용제 책장 구석 수북한 먼지를 쓸어본다 먼지의 살결이 부드럽다 손바닥을 털면 형체도 느낌도 없이 사라질, 오래전 이것도 어떤 사물이었던가 수수억년 전에는 웅장한 바위였거나 여린 풀포기였거나, 혹은 거대한 공룡의 몸으로 포효를 했던가 잠깐씩 반짝이며 흩어.. 한줄 詩 2016.08.30
그 저녁의 흐느낌처럼 - 이성목 그 저녁의 흐느낌처럼 - 이성목 어둠에 등을 대고 부음을 듣는다 목덜미를 스쳐 어깨를 넘어가는 울음은 주름살 사이에 고여도 깊다 그렇게 떠날 것은 무엇인가 기별을 꽃처럼 전할 것은 무엇인가 맺혔다가 풀리고 풀려서 수런거리는 강물이 한 몸을 받아 철렁 내려앉은 봄날 낮고 아득.. 한줄 詩 2016.08.29
그 길은 푸른 발자국만 뜯어먹는다 - 허순위 그 길은 푸른 발자국만 뜯어먹는다 - 허순위 외발로 멈추어 선 저녁 계단. 발바닥 밑으로 중력이 바뀌어 간다. 집으로 가는 길이란 말 누군가 공중에 흩뿌려 놓은 포플러 잎사귀들같이 푸들거리는 슬픔과 불안의 공기를 뚫고 멀리 아득하다. 맡은 역의 대사는 아직 못 다 외웠지만, 기나긴.. 한줄 詩 2016.08.29
인간의 벼랑 - 백무산 인간의 벼랑 - 백무산 땟국물 전 얼굴로 먼지 속을 놀다 온 글씨 아직 모르던 어린 내 손에 어머니는 작은 쪽지와 돈을 쥐어주셨다 쪼들린 가슴병 깊은 어머니 어쩌면 웃으실까 여름 땡볕을 걸어 먼 신작로를 달음질쳐 검정고무신 안에서는 땀 젖은 발이 연신 미끈거리고 말씀대로 여러 .. 한줄 詩 2016.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