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입가에 물집처럼 - 김두안

입가에 물집처럼 - 김두안 달이 뜬다 해도 지기 전에 뜬다 나는 어둠이 보고 싶어 내 어두움도 보일 것 같아서 부두에 앉아 있는데 달이 활짝 뜬다 달빛은 심장을 욱신거리게 하고 희번득 희번득 부두에 달라붙고 있다 아 벌리다 찢어진 입가에 물집처럼 달빛은 진물로 번지고 있다 달은 어둠을 뻘밭에 번들번들 처바르고 있다 저 달은 환하고도 아찔한 내 안에 근심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초병에게 쫓겨가는 통제구역인 것 같아서 나는 캄캄한 나를 어떻게든 더 견뎌 보기로 한다 *시집, 달의 아가미, 민음사 덫 - 김두안 새벽 묵호항 눈이 내린다 한 사내 담장 밑에 앉아 그물을 꿰맨다 온통 주름에 휘감겨 몸부림친 얼굴 상처를 접고 상처를 펼친다 찢기고 터진 자리 대바늘이 파르르 손등을 파고든다 사내의 시린 손마디가 눈발 ..

한줄 詩 2017.12.11

안녕하신가, 나여 - 류흔

안녕하신가, 나여 - 류흔 그때에는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지 내 고독을 말리려고, 그의 양지를 빌리지는 말았어야지 여태 갚지 못한 그의 빛을 빚처럼 안고 사는 나여 산다는 것을 무엇으로 견디는지 밤새 뒤척인 잠과 뒤적인 꿈으로 머리맡 갈증은 벌컥벌컥, 화를 내고 그래 밤새 안녕하신 이들 속에 내가 있었구나 흔치 않은 그가 쓰윽 돋아난 거울 속에 턱을 올려놓고 면도날을 박아넣거나 거품을 닦아내거나 새로 돋아난 새치를 뽑거나 수십 년 빚어놓은 얼굴을 돌보면서 얼핏 그런 생각이 드는 거 있지 무엇으로 견디며 참 기적으로 살아왔는지 살아갈지 *시집, 꽃의 배후, 바보새 자화상 - 류흔 이미 늙기 시작한 시간을 나는 외면한다 노쇠한 시간은 세월 탓이라고, 내가 겪어온 설움 때문에 아니라고 생각했다 거울 앞에선 반대..

한줄 詩 2017.12.11

다음 열차 - 유병근

다음 열차 - 유병근 그 물빛의 찌그러짐에 합승한 그 물빛에 어리는 주름살에 합승한 물빛이 말하는 들고남에 합승한 어긋나다가 돌아서는 소용돌이에 합승한 어쩌다 앙큼한 꿍꿍이에 합승한 흐리다가 맑아지는 천방지축에 합승한 방축에 주저앉은 알갱이에 합승한 꼬리 무는 헛소문과 참소문에 합승한 물갈퀴로 할퀴는 아귀다툼에 합승한 끝장 보는 날의 멍투성이에 합승한 뚫어도 다 뚫지 못하는 가슴앓이 고로쇠나무의 상처에 합승한 아무 이유도 없는 아무것에 합승한 구름에 떠도는 소용돌이와 물빛지느러미와 아가미에 합승한 다음 열차는 다음 역까지만 간다 *시집, 꽃도 물빛을 낯가림한다. 작가마을 뽕짝설화 - 유병근 뽕짝으로 읊는 뽕짝의 목덜미에 한 계절이 오고 한 계절이 가고 있다 뱃고동소리 또한 한 계절이다 계절에 익은 뽕짝이..

한줄 詩 2017.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