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입가에 물집처럼 - 김두안

마루안 2017. 12. 11. 22:58

 

 

입가에 물집처럼 - 김두안


달이 뜬다
해도 지기 전에 뜬다
나는 어둠이 보고 싶어
내 어두움도 보일 것 같아서
부두에 앉아 있는데
달이 활짝 뜬다
달빛은 심장을 욱신거리게 하고
희번득 희번득 부두에 달라붙고 있다
아 벌리다 찢어진 입가에 물집처럼
달빛은 진물로 번지고 있다
달은 어둠을 뻘밭에 번들번들 처바르고 있다
저 달은 환하고도
아찔한 내 안에 근심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초병에게 쫓겨가는
통제구역인 것 같아서
나는 캄캄한 나를
어떻게든 더 견뎌 보기로 한다


*시집, 달의 아가미, 민음사


 

 



덫 - 김두안


새벽 묵호항 눈이 내린다
한 사내
담장 밑에 앉아 그물을 꿰맨다
온통 주름에 휘감겨
몸부림친 얼굴
상처를 접고 상처를 펼친다
찢기고 터진 자리
대바늘이 파르르 손등을 파고든다
사내의 시린 손마디가
눈발 하나 꺾어
그물을 꿰맬 때마다
매듭이 굵은 눈발 시장 바닥에 쌓여 간다
시장 보러 나온
싱싱한 발자국들
눈 속에 파묻혀 파닥거린다
장작불 꺼져 가는
페인트 통 속에서
눈 매운 아침이 피어오른다
덧없이 살아온 것 덫만 같아서
사내의 비릿한 입김 속에도
굽은 등 위에도
눈발 그물 엉키기지 않고 내린다





# 김두안 시인은 1965년 전남 신안에서 태어났다.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달의 아가미>가 첫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