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일모도원(日暮途遠) - 김광수

일모도원(日暮途遠) - 김광수 나 그대와 마지막 작별이 두려워 독화살 맞은 들짐승처럼 신음하며 눈 내리는 칼바람 들판을 배회했네 붉은 피가 떨어지는 사냥감의 육질과 화려한 깃털의 명리를 쫓는 시늉 주색의 어지러운 장단 속에 헛된 춤을 추다 나 그대를 잊은 적이 없는데 그대와 마지막 송사를 나누지도 못했는데 해는 지고 날은 저물어 새들도 모두 날아가 빈 나뭇가지만 휑- 하네 아직 길의 끝은 보이지 않는데 발길에 걸리는 기억의 쇠꼬챙이들에 자꾸만 넘어지고 찢어지네 *시집, 비슷비슷하게 길을 잃다, 문학과경계사 도망(悼亡) - 김광수 꿈이라면 좋겠네 스냅사진 속의 그대와 나 남산식물원 분수 백합처럼 희게 피어있고 봄 햇살은 그대 빨간 구두 위에서 즐겁게 물장구치고 있는데 어디로 갔는가? 어디에 있는가? 꿈이라..

한줄 詩 2017.12.04

아버지의 등을 밀며 - 손택수

아버지의 등을 밀며 -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입속에 준비해둔 다섯살 대신 일곱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

한줄 詩 2017.12.04

그립다는 말 - 조찬용

그립다는 말 - 조찬용 이순이 가까운 시절 한때 찔레꽃같이 피었다 시든 그 유장한 길들의 몸부림을 생각하면 그립지 않은 것들이 없다 살아온 게 아니고 밥벌이에 목을 매 살아진 게 아니었느냐고 말을 해도 이젠 낯부끄러울 것 없는 이유와 덤덤해진 변명 아물아 흘러온 인생아, 남은 시절은 또 얼마나 그리울 것이냐 *시집, , 북랜드 소풍 - 조찬용 아이들이 성벽 길을 줄지어 소풍을 간다 두 노인네 느티나무 아래에서 장기를 두며 아이들을 바라본다 거쳐 온 인생과 거쳐 가는 인생 사이 공간의 담장 벽 덜렁 둘이 마주앉은 황혼의 길에서 장기를 둔다 그땐 우리도 많이 설레었지 그랬었지 잠을 이루지 못해도 아침은 환했었지 하루하루 덮고 나면 이리 지나온 일인 것을 말이네 꿈길을 걸어온 셈이지 저 아이들도 오늘 꿈길을 ..

한줄 詩 2017.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