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너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어서 좋다 - 백인덕

마루안 2017. 12. 11. 23:03



너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어서 좋다 - 백인덕
-겨울 봉함엽서 8



어디로 가면 너를 만날까?
어떻게 너를 만날까?
사각 유리창에 스며드는 햇살은 자꾸 엷어지는데
나무들은 속 깊은 곳에서부터 시들어가는데
추억의 어떤 이니셜도 생각나지 않는
차고 흰 겨울이 오고 있다. 내가
조금만 더 이 도시의 외곽을 둘러싼 안개 같았다면
그 안에 방향 없는 불빛만 같았다면
네게로 돌아가는 골목, 근처쯤은 더듬을 수 있었겠지만
무작정 나는 옮겨 앉고 싶었다.
하루하루 날짜가 바뀌며 쌓이는 신문철같이
감당할 수 있는 중량만큼의 슬픔에 눌려 있고 싶었다.
반역에 연루된 소심한 남자처럼 너를 향한 모든
내 사소한 근심들을 사랑한다.
너는 언제나 만날 수 없는 사람이어서 좋다.



*시집, 끝을 찾아서, 하늘연못








겨울 봉함엽서 2 - 백인덕



당신이 잠드는 땅, 거기 아직도 절망은 겨울비로
내립니까. 황혼이면 빈 나뭇가지 사이 웅크려 떨다가
추위로 내몰린 짐승처럼 길을 나섭니다. 두려움이
어떤 희망이나 기대보다 우선하는 것은 이 땅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의 우울한 특징이 되었습니다.
지난 여름 말끔히 보수된 하수로를 따라 밤의 도시는
사랑의 암거래에 골몰하지만 적당한 여자 하나 만나
손목이나 잡아끌고 밀며 살아남기에도 여전히
수월치 않습니다. 부디,
부디 아픈 마음으로 답신하지 마십시오.
흐린 하늘 간간히 쏟아지는 눈발의 무게마저도 감당할
수 없는 슬픔으로 자리잡혀 있습니다. 어긋나기 위하여
복면하는 시간이 필요하듯이 단순한 기다림으로 어린
蘭이나 키우며 살아 있으십시오. 당신이 잠드는 땅,
거기 겨울비 내리는 내내 아직도 우리는 조여드는
어둠에 갇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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