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눈물 처방 - 김윤환

눈물 처방 - 김윤환 안압이 오른 후에 의사 왈 신경 쓰지 마세요 무리하지 마세요 뭐 그리 신경 쓸 일도 무리할 일도 없는 나에게 참 과분한 처방이다 얼핏 들으면 신경 좀 쓰고 살아라, 힘 좀 쓰고 살아라 양심에 독촉하는 듯 들려 약 처방에 인공눈물약이 들어있네 하루 대 여섯 번 눈물을 넣으라네 얼마나 울지 못했으면 얼마나 눈물이 말랐으면 눈물약이라니 참, 눈물이 난다 *시집, 이름의 풍장, 도서출판 애지 녹내장(綠內障) - 김윤환 지천명(知天命) 쉰 살 문턱으로 찾아 온 손님 그 이름 가만히 짚어보니 내면에 기록됨을 막는다 하여 녹내장이라 돌아보면 앞만 보고 달려온 날들 그 좁은 시야로 넓은 세상 꿈꾸며 살았지 점안약 넣을 때마다 놓친 풍경 새록새록 선명하네 두려움보다 그리움이 앞서는 고마운 손님 # ..

한줄 詩 2017.12.13

한 번쯤은 나를 잊기도 하면서 - 윤향기

한 번쯤은 나를 잊기도 하면서 - 윤향기 한 번쯤은 하늘의 별을 헤며 걷다가 그리운 이의 이름을 부르며 걷다가 숲 속에 빠져 길을 잃고 싶다. 불러도 불러도 사람의 목청이 닿지 않는 먼 곳 섬에 갇히어 누군가를 소원처럼 기다리고 싶다. 내 이름도 잊어버리고 웃음도 낯설어지면 쏴 쏴 밀려오는 파도에 깎이는 가슴 앙상하게 남은 마음만 들고 노을 든 벼랑에 서 있고 싶다. *시집, 내 영혼 속에 네가 지은 집, 문학예술 어떤 예감 - 윤향기 그대가 떠난 것은 오지 않기 위하여 간 것이라지만 다시 오기 위하여 간 것처럼 보입니다. 함께 입은 세월을 벗어 들고 떠난 가방 속엔 그리움만 꽉 채우고 그대가 말없이 떠난 것은 오늘도 돌아오기 위한 시작처럼 보입니다. # 윤향기 시인은 충남 예산 출생으로 1991년 문학..

한줄 詩 2017.12.13

내 가을의 고물자전거 - 이강산

내 가을의 고물자전거 - 이강산 여행의 쉼표를 찍듯 잠시 다녀가는 부곡하와이 9월 19일 오후.... 이쯤에서 슬그머니 가을이 오곤 했었지 시간의 길목을 두리번거리는 사이 낙엽을 밟는다, 처음 밟아본다 그래, 그러고 보면 내 가을은 종종 아주 오래 전 가을의 낌새를 눈치 챈 나이로부터 지금까지 오늘처럼 '낙엽을 처음 밟아본다'는 독백에서 시작되었다 내 가을은 또 발바닥에 밟히는 낙엽의 분량만큼 두툼해졌다가 얇아졌다 말하자면 나의 가을은 독백과 발바닥으로부터 마흔 번쯤 오고 간 셈이다 낯선 거리에서 불현듯 마주친 가을 때문에 길 잃은 사람처럼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이대로 가을이 깊어져서는 안 되겠다는 불암감으로 낙엽 몇 잎은 피해간다 장수풍뎅이는 아닐 텐데, 길바닥에 말라붙은 곤충 한 마리도 비껴간다 물웅덩..

한줄 詩 2017.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