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킹, 그 겨울 오후 1 - 김이하
마네킹, 그 겨울 오후 1 - 김이하 한 천년쯤은 흘렀겠지요 그래도 그날 오후는 따뜻했습니다 아마, 당신의 눈빛이 내 가슴에 꽂히는 이 순간을 기다리면서 살았을 나의 계절은 몇 번인가 옷을 벗고 알몸으로 휘청거렸을 테지만 여기서 더 가깝진 못했지요 그래요, 그건 당신이 알지요 한 천년쯤은 훌쩍 흘러갔겠지요 빈방으로 돌아가고 빈방에서 나오던 당신이 내게서 멀어진 시간들 그 밤, 훅! 하고 방안에서 끼치던 살 냄새 그건 당신이 벗어 던지던 몸의 세월이겠지요 누가 알겠어요, 발부리에 걸린 빈 술병들 혼자 울다가 뒹구는 어둠을 날카롭게 누군가 가슴을 찌르고 도망치던 뒷모습을 누가 알겠어요, 천년의 세월도 덧없었음을 그 겨울 오후 절벽의 어둠을 떨구고 이제 막 거리를 덮는 물결 누군가 돌아오고 있군요 그러나 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