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바이칼에 새긴 - 강신애

바이칼에 새긴 - 강신애 일망무제 타오르는 분홍 노을의 첫 마음, 만년설의 고백 돌에 이름 새겨 바이칼 투명 깊이 던져 넣은 이 있으니 최후의 한 방울까지 바이칼은 소년의 첫 마음으로 저리 붉으니 그날, 빽빽한 자작나무 숲 사이 문득 마주친 곰도 백화피(白樺皮)를 긁던 주머니칼을 떨어뜨리고 얼어붙은 너의 표정을 기억하겠지 비뚤게 새겨진 이름은 수피에 돌돌 감겨 은빛 자작나무 되었으리 바이칼을 향해 의심 없이 목질의 눈을 뜨고 서 있으리 민물이 담긴 물일 뿐인데 영원히 발굴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가을은 살얼음 언 호수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어둡고 차가운 바닥에 떠도는 돌 하나를 건져 올린다 밑 모를 수심에 가해진 네 팔의 관성이 박혀 붉은 어안(魚眼)처럼 태허의 비밀과 사랑의 전모를 만곡으로 끌..

한줄 詩 2018.01.11

치명적은 부재 - 여태천

치명적은 부재 - 여태천 나는 이제 암흑의 허공에 앉아 당신을 본다 그것은 어쩌면 부재의 사태 총천연색이 단 하나의 점으로 사라지는 순간 흑백의 표면으로부터 길게 종적을 남기며 빛이 날아오른다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소문의 꼬리가 불태환(不兌換) 기호처럼 여기저기 떠돌고 영원히 떠나지 못할 사태의 기억만이 당신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리는 시간 사각사각 소리내며 내 몸을 빠져나가는 에네르기 난 느리게 세상을 살아왔으므로 당신의 외출이 언제까지인지 모른다 돌아오지 않을 당신을 기다린 건 치명적인 실수였다 당신의 말을 간절히 믿었으므로 머지않아 나는 고독해질 테지만 정전(停電)의 순간 움직이는 것들을 위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위해 이 허공에서 허락받은 짧은 침묵을 위해 난 그저 맨얼굴로 당신 앞에 서 있다 조금씩..

한줄 詩 2018.01.11

억새꽃 - 김일태

억새꽃 - 김일태 살아서 잠시 꽃이 되었다가 흔적 없이 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피운 대로 스스로 죄다 누리고 간 이들입니다 세상에는 죽어서야 오래도록 꽃이 되는 이들도 있습니다 피우지도 누리지도 못하고 간 이들입니다 칼날 같은 잎으로 의지를 다지며 살아 있는 뭇 것들이 모두 숨어 들어갈 때 죽어 하얗게 자신을 펼치는 풀꽃이 있습니다 겨울 바람 속으로 한 낱 한 낱 홑이름 날려 보내는 그런 풀꽃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이 있습니다 *시집, 어머니의 땅, 동학사 날개 - 김일태 흘러간 유행가 날개를 라디오로 듣습니다 전답 팔아 서울 가서 가수 되려 했던 삼 이웃 근동에서 노래인기 제일 가던 진경이 형 날개 꺾여 돌아와서 기타 치며 부르던 노래입니다 날아라 날아라 눕지 말고 날아라 끝내 히트곡 하나 없이 날개만 퍼..

한줄 詩 2018.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