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행복여관 - 강영환

마루안 2018. 1. 6. 12:28



행복여관 - 강영환



국화꽃무늬를 덧칠해 도배한 벽에는
평생 낯익은 소리들이 숨어 있다
상처내지 않아도 꽃이 내는 신음인줄 알지만
가느다란 숨소리부터 오토바이 지친 엔진음 같은
코골이 소리를 짓눌러버리는 까무러치는 비명까지
가만히 누워 생각하지 않아도 들려오는 벗은 몸은
못 박는 망치소리에 이어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아기 울음 속으로 짜증 섞인 기차가 갈 때까지
숨어있던 좁은 터널을 빠져나와 귓바퀴를 굴렸다
몸이 맨 처음 전해주는 소리를 알지 못하자
숱한 다른 소리들을 꺼내 들려주는 달팽이가 끝내
오지 않는 잠 때문에 혈관이 회오리쳤다
아직 처녀인 방은 벽에 붉은 꽃을 피운 채
아픈 소리를 다물지 못하고 문을 열었다
귀 기울여도 알지 못하는 새벽까지 뜬 눈으로
서 있는 국화꽃을 쓰러뜨리지 못한 사내는
귀에 숨겨둔 애인을 꺼내 벽에 붙였다



*시집, 출렁이는 상처, 책펴냄열린시








분재 - 강영환



1.

더 크고 싶은데 주인이 반대다
착한 주인은 형상을 빚었다
성장점을 잘라 키를 망쳐 놓고
몸을 조여 허리를 꺾었다
손발을 끌어 뒤틀리게 한 뒤
파킨슨 병자로 오인 받게 하거나
뇌성마비 손가락을 만들었다
하늘로 날아가고 싶고 뛰어오르고 싶고
살아 있는 키는 멈출 줄 모르는데
눈 먼 주인은 밤낮
사지 펴지 못한 불구를 원했다
그게 맨 나중 사랑인 것처럼


2.

더 자라지 않고 따라주면 좋으련만
구부려 놓은 대로 살아주길 바라는데
작은 분에 심어 놓은 솔은
의도를 거슬려 손 밖으로 달아났다
관심 가져주지 않을 때 키를 높여
잡아 놓은 몸매를 펴고 멋대로
본성을 고집하는 일을 놓지 않는 것이
평생 타고난 의무인 것처럼
발자국 소리에도 놀라지 않았다
스스로 굽힐 줄 모르는 솔은
게으른 틈을 노려 자주 도피했다
그게 맨 처음 사랑인 것처럼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과가 붉어지는 이유 - 이강산  (0) 2018.01.06
절반만 말해진 거짓 - 신용목  (0) 2018.01.06
슬픔으로 가는 길 - 정호승  (0) 2018.01.05
길은 죽음을 욕망한다 - 이수익   (0) 2018.01.05
폐차 - 서영택  (0) 2018.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