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개 같은 사랑 - 최광임

마루안 2018. 2. 1. 20:41

 

 

개 같은 사랑 - 최광임


대로를 가로지르던 수캐 덤프트럭 밑에 섰다
휘청 앞발 꺾였다 일어서서 맞은편 내 자동차 쪽
앞서 건넌 암캐를 향하고 있다, 급정거하며
경적 울리다 유리창 밖 개의 눈과 마주쳤다
그런 눈빛의 사내라면 나를 통째로 걸어도 좋으리라
거리의 차들 줄줄 밀리며 빵빵거리는데
죄라고는 사랑한 일밖에 없는 눈빛, 필사적이다
폭우의 들녘 묵묵히 견뎌 선 야생화거나
급물살 위 둥둥 떠내려가는 꽃잎 같은, 지금 네게
무서운 건 사랑인지 세상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간의 생을 더듬어보아도 보지 못한 것 같은 눈
단 한 번 어렴풋이 닮은 눈빛 하나 있었는데
그만 나쁜 여자가 되기로 했다

그 밤, 젖무덤 출렁출렁한 암캐의 젖을 물리며
개 같은 사내의 여자를 오래도록 꿈꾸었다


*시집, 도요새 요리, 북인

 

 

 

 

 

 

물의 집 - 최광임 


사랑은 전신을 훑고 지나는 소주 한 잔의 떨림으로 온다
도도한 강물로 굽이쳐 포구에 몸 푸는 물과 같이
첫 잔을 기울일 때 목젖을 적시며 물길 굽이굽이
몸 가장 아래에서 번지는 짜릿함이다 

술 마시며 취할 것을 미리 염려하지 않는 것과 같이
사랑보다 이별 뒤를 염려하는 이는 드물다, 다만
첫 잔을 꺾어 마시듯 사랑하기에 주저하는 것은
술은 잔이 넘치도록 따를 수 없는 법이어서
언제나 2할이 부족한 잔의 속성을 알기 때문이다 

나를 다 비워 누군가를 채워본 사람은 안다
누군가가 나를 다 채워 주기를 기다린 사람은 안다
언제나 2할의 차가운 알몸을 드러낸 채 흔들리는 불
마치 내 늑골 어디쯤을 드나드는 허허로운 바람 같은 

사랑이 올 때도 사랑이 지나갈 때도 아닌
누군가와 사랑하고 있을 때, 안다 우리는
먼 강을 굽이쳐 흘러온 말랑말랑한 물의 집
얼마나 간절히 만조의 바다를 꿈
꾸는지


 

 

# 최광임 시인은 전북 부안 출생으로 2002년 <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내 몸에 바다를 들이고>, <도요새 요리>가 있다. <시와경계> 부주간, <디카시> 주간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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