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벽에 걸린 것들 - 김남극
자꾸 늘어지는 내 생활에 진정성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처마 밑에 목이 걸린 괭이를 쳐다본다
목을 매고 있으니 내 생활처럼 처연한데
나는 그 옆에 걸린 삽괭이와
또 그 옆에 걸린 거룻대를 경건하게 쳐다보다가
그 오래된 것들로 내 마음을 뒤적거린다
녹슨 쇠스랑으로 찍어 파낼 무슨 진정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자꾸 늘어지는 뱃살과 두꺼워지는 발바닥과
쭈글거리는 손등을 자주 들여다보면서
농경 사회를 소문으로 만들어버린 세상의 빠르기와
더 빨라지는 가속도와
그 속도의 등에 올라탄 지구를 생각한다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 지구에 가득할 것이다
*시집, 너무 멀리 왔다, 실천문학사
손 그늘 - 김남극
험한 일이라고는
산에 가 나무를 하거나
감자를 조금 캔 것밖에 없는데
손마디 굳은살이 없어지지 않는다
참나무 작대기 같은 이 손으로
책을 읽고 말 같지도 않은 시를 쓰고
밥을 안치기도 한다
겨울 햇볕에 손을 내놓고 들여다본다
청춘은 흔적이 없고 그늘만 있다
이 그늘빛을 어쩌란 말인지
마디마다 주름이 깊으니
머리는 희어지고 눈은 침침해진다
너무 빨리 나는 늙어버렸다고 생각하다가
다시 손마디를 내려다본다
그늘이 창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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