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외벽에 걸린 것들 - 김남극

마루안 2018. 2. 1. 19:06



외벽에 걸린 것들 - 김남극



자꾸 늘어지는 내 생활에 진정성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처마 밑에 목이 걸린 괭이를 쳐다본다
목을 매고 있으니 내 생활처럼 처연한데
나는 그 옆에 걸린 삽괭이와
또 그 옆에 걸린 거룻대를 경건하게 쳐다보다가
그 오래된 것들로 내 마음을 뒤적거린다
녹슨 쇠스랑으로 찍어 파낼 무슨 진정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자꾸 늘어지는 뱃살과 두꺼워지는 발바닥과
쭈글거리는 손등을 자주 들여다보면서
농경 사회를 소문으로 만들어버린 세상의 빠르기와
더 빨라지는 가속도와
그 속도의 등에 올라탄 지구를 생각한다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 지구에 가득할 것이다



*시집, 너무 멀리 왔다, 실천문학사








손 그늘 - 김남극



험한 일이라고는
산에 가 나무를 하거나
감자를 조금 캔 것밖에 없는데
손마디 굳은살이 없어지지 않는다
참나무 작대기 같은 이 손으로
책을 읽고 말 같지도 않은 시를 쓰고
밥을 안치기도 한다


겨울 햇볕에 손을 내놓고 들여다본다
청춘은 흔적이 없고 그늘만 있다
이 그늘빛을 어쩌란 말인지


마디마다 주름이 깊으니
머리는 희어지고 눈은 침침해진다


너무 빨리 나는 늙어버렸다고 생각하다가
다시 손마디를 내려다본다


그늘이 창궐하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쓸쓸한 연애 - 윤성택  (0) 2018.02.01
친구야, 혼자서 가라 - 최금진  (0) 2018.02.01
말한다, 나의 아름다운 우주목 - 황학주  (0) 2018.01.31
구름 속의 산책 - 김신용  (0) 2018.01.31
중년의 번식 - 문신  (0) 2018.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