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이제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 류근

마루안 2018. 1. 30. 19:36



이제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 류근



이제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 때문에 서로를 외롭게 하지 않는 일
사랑 때문에 서로를 기다리게 하지 않는 일


이제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 때문에 오히려
슬픔을 슬픔답게 껴안을 수 있는 일
아픔을 아픔답게 앓아낼 수 있는 일


먼 길의 별이여
우리 오래 너무 떠돌았다
우리 한 번 눈 맞춘 그 순간에
지상의 모든 봄의 꽃 피었느니


이제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푸른 종 흔들어 헹구는
저녁답 안개마져 물빛처럼
씻어 해맑게 갈무리할 줄 아는 일


사랑 때문에
사랑 아닌 것마저 부드럽게
감싸 안을 줄 아는 일


이제 우리가 진실로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시집, 어떻게든 이별, 문학과지성








명왕성 이후 - 류근



잊혀진다는 건
좋은 일이다
봄날 네 가슴에 처음 온 꽃잎으로 피었다가
오는 비 가는 세월에 남김없이 스러져
저물어간다는 건


내가 먼저 이 별에 가자고 했다
눈 덮인 지붕들 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죽은 별들의 추억처럼 따뜻해서
이 별에선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먼저 왔고
너 나중에 왔고
내 기억이 기억나기 전에
꽃들이 먼저 피었다


우리 이 별에서
너무 늦게 만났다


아무런 뜻도 없이
꽃이 피고 비가 오는 날들이 지나갔다


너무 늦게 이 별에서
너를 만났다





# 잊혀진다는 건 좋은 일인가? 잊으면 좋겠으나 안 잊혀지는 것이 문제다. 사랑 때문에 슬픔을 슬픔답게 껴안을 수 있다니,,,,
조금 늦게 만났더라도 만남이란 좋은 것, 그는 갔는가? 아니 그가 오긴 왔던가? 너무 멀리 있는 사람아,, 시 읽는 겨울밤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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