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낙화 - 김정수

낙화 - 김정수 꽃잎 하나 지는 걸 바라보는 저녁 그 꽃잎 지길 기다리는 아스팔트의 딱딱한 기억을 밟고 서다 본래 고독한 자리에서의 탄생은 한자리에 머물 수 없는 허공 같은 것 쉽게 자리를 이탈해 바람결을 타는 운명을 타고나는 것이 있다 결코 짧은 수 없는 지난한 항해를 시작한 사내가 빛과 어둠과 먼지의 이력을 속속들이 헤집는 동안 불빛만 보면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부나비의 속성으로 도처에 포진한 항성과 행성 사이를 관통하는 동안 혼자서 빛을 발할 수 없는 허공 같은 방랑의 길 순간의 빛으로 꼬릴 매달기도 하지만 어둠은 혼자 머무는 외로운 여행의 동반자 정해진 궤도도 없이 뚜벅뚜벅 마음 쉬어 가는, 정류장도 없이 모래 폭풍 불어 항로를 이탈하면 새로운 항로를 설정하지만 단 한 번도 비굴하거나 오장육부를 내..

한줄 詩 2018.04.30

분홍역에서 - 서규정

분홍역에서 - 서규정 아득히 멀어져 가는 기적소리를 늦은 봄비로 그쳐 세우리 우산꽃, 분홍잎새 활짝 핀 유리창에 부서지고 깨어지며 몰려 나간 안색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저마다의 싸움에서조차 한쪽 편을 들어주고 얻은 전흔의 전리품인가 반쪽 잘린 차표를 쥐고 몇 번이나 밖을 내려다보다가 사라져 간다 그래 가장 낮은 목소리들이 사는 가슴 깊숙히 철렁 그물을 던져도 아무 것도 걸리지 않는 우리들의 삶이란 허탕칠 때 비로소 아름다웠다 남아 있는 것들은 제 이름을 부르면서 돌아서는 봄날의 간이역 반쪽을 줍다가 나머지를 잃어버린 우리 흔들리며 떠나던 유리창에 우산꽃은 지고 우리들은 깊이 박힐 못 하나의 모습으로 언제까지 제 얼굴을 외우며 서 있어야 한다 *시집, 황야의 정거장, 문학세계사 황야의 정거장 - 서규정 -..

한줄 詩 2018.04.29

나도 너도 이미 피어있는 꽃 - 김광수

나도 너도 이미 피어있는 꽃 - 김광수 나는 이미 피어있는 꽃 크지도 작지도 높지도 낮지도 않다 화려하지도 소박하지도 않게 꽃으로 피어있을 따름 달빛 아래 휘영청 돌아가기도 하는 강물처럼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이하다 맑은 햇살에 경탄할 뿐 꽃이 져도 지는 것이 아니다 너도 꽃이다 나와 다른 너를 호흡하는 것은 온 우주를 들이마시는 것 같다 너와 나의 경계가 무너져 하늘과 땅이 온통 꽃밭이다 *시집, 비슷비슷하게 길을 잃다, 문학과경계사 변론(辯論) - 김광수 어떤 이는 나에게서 총명을 읽어 가고 어떤 이는 나에게서 우치를 읽어낸다 어떤 이는 목마의 방울소리 같은 우울한 몽환에 젖어가고 어떤 이는 엽총을 물고 죽은 혁명가의 과격한 행동주의를 경계하라고 조언한다 어떤 이는 나에게서 고매한 ..

한줄 詩 2018.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