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마음 뒷곁에 소를 매다 - 이은심

마음 뒷곁에 소를 매다 - 이은심 ​ 느닷없이 어두워져 한 차례 소나기 퍼붓더니 건너갈 수 없는 곳이 생겼다 소는, 거기서 운다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짖던 것들 잦아들고 믿었던 것들도 다 휩쓸려가고 소가 몰매를 맞는다 말뚝에 매인 몸이 오죽하면 눈물의 반지름을 도는 동안 작당하고 몰려와 쏟아지는 채찍을 피할 수 없는 사랑처럼 홀로 견디는 그대여 이제 젖은 마음을 뒤적이면 그 터진 잔등을 어디서 본 듯 하여라 오래 된 얼굴을 지금 막 내게로 돌리는 쓸쓸한 신(神)의 모습 용서마소서 쩌엉- 울음 끝을 뭉개는 번개 이쪽에서 혼자 늦은 점심을 먹다가 부득이 마음 뒷곁에 소를 매고 후줄근히 젖는 사람이 있다 목부가 낮잠에 빠져 꿈에 떡을 얻어먹는 잠시잠깐의 일이다 *시집, 오얏나무 아버지, 한국문연 초음파 메시지..

한줄 詩 2018.04.22

큰 꽃 - 이문재

큰 꽃 - 이문재 꽃을 내려놓고 죽을 힘 다해 피워놓은 꽃들을 발치에 내려놓고 봄나무들은 짐짓 연초록이다.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 없다는 맑은 노래가 있지만 꽃 지고 나면 봄나무들 제 이름까지 내려놓는다. 산수유 진달래 철쭉 라일락 산벚- 꽃 내려놓은 나무들은 신록일 따름 푸른 숲일 따름 꽃이 피면 같이 웃어도 꽃이 지면 같이 울지 못한다. 꽃이 지면 우리는 너를 잊는 것이다. 꽃 떨군 봄나무들이 저마다 다시 꽃이라는 사실을 저마다 더 큰 꽃으로 피어나는 사태를 눈 뜨고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꽃은 지지 않는다. 나무는 꽃을 떨어뜨리고 더 큰 꽃을 피워낸다. 나무는 꽃이다. 나무는 온몸으로 꽃이다.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낙화 - 이문재 바람 한 점 없는데 하르르- 꽃잎 하나 떨어진다...

한줄 詩 2018.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