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나도 너도 이미 피어있는 꽃 - 김광수

마루안 2018. 4. 29. 21:57

 

 

나도 너도 이미 피어있는 꽃 - 김광수

 

 

나는 이미 피어있는 꽃

크지도 작지도

높지도 낮지도 않다

화려하지도 소박하지도 않게

꽃으로 피어있을 따름

달빛 아래

휘영청 돌아가기도 하는 강물처럼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이하다

맑은 햇살에 경탄할 뿐

꽃이 져도 지는 것이 아니다

 

너도 꽃이다

나와 다른 너를 호흡하는 것은

온 우주를 들이마시는 것 같다

너와 나의 경계가 무너져

 

하늘과 땅이 온통 꽃밭이다

 

 

*시집, 비슷비슷하게 길을 잃다, 문학과경계사

 

 

 

 

 

 

변론(辯論) - 김광수

 

 

어떤 이는 나에게서 총명을 읽어 가고

어떤 이는 나에게서 우치를 읽어낸다

어떤 이는 목마의 방울소리 같은 우울한 몽환에 젖어가고

어떤 이는 엽총을 물고 죽은 혁명가의 과격한 행동주의를 경계하라고 조언한다

어떤 이는 나에게서 고매한 학문을 읽었다고 상찬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남루한 생활을 보았다고도 한다

또 어떤 이는 깊은 바다의 적멸 같다고 하고

어떤 이는 욕망에 쩔쩔매는 나의 눈빛이

요실금 환자의 그것과 닮았다고도 한다

어느 자취가 나라고 불리울 차취인가

나의 어디에 있는가

아니면 이 모든 것들이

당신과 나 사이에 피어난 꽃들인가

당신과 나 사이를 흐르는 차가운 강물인가

 

 

 

 

# 김광수 시인은 1964년 전남 구례 출생으로 전남대 사법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했고 동방불교대 승가학과를 졸업했다. 중국 상해 복단대에서 중국어와 한문을 공부했다. 2002년 계간 <문학과경계> 시부문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비슷비슷하게 길을 잃다>가 첫 시집이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나무 아래서의 약속 - 이기철  (0) 2018.04.29
분홍역에서 - 서규정  (0) 2018.04.29
후회할 게 없다 - 박세현  (0) 2018.04.29
노인의 방 - 이수익  (0) 2018.04.29
뭐가 이리 붉은가 - 최문자  (0) 2018.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