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왜 지나간 일을 생각하면 - 허수경

왜 지나간 일을 생각하면 - 허수경 왜 지나간 일을 생각하면 꿈 같은가 현세의 거친 들에서 그리 예쁜 일이라니 나 돌이켜 가고 싶진 않았다네 진저리치며 악을 쓰며 가라 아주 가버리라 바둥거리며 그러나 다정의 화냥을 다해 온전히 미쳐 날뛰었던 날들에 대한 그리움 등꽃 재재거리던 그 밤 폭풍우의 밤을 향해 나 시간과 몸을 다해 기어가네 왜 지나간 일은 지나갈 일을 고행케 하는가 왜 암암절벽 시커먼 바위 그늘 예쁜 건 당신인가 당신뿐인가 인왕제색커든 아주 가버려 꿈 같지도 않게 가버릴 수 있을까, 왜 지나간 일을 생각하면 내 몸이 마음처럼 아픈가 *시집, 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 꽃핀 나무 아래 - 허수경 한때 연분홍의 시절 시절을 기억하는 고약함이여 저 나무 아래 내 마음을 기댄다네 마음을 다 놓고 갔..

한줄 詩 2018.04.25

빈 화분 - 김점용

빈 화분 - 김점용 베란다에 빈 화분이 하나 오래 전부터 놓여 있다 언젠가 분재에 열중인 사람에게 어린나무를 너무 학대하는 거 아니냐고 넌지시 묻자 화분에 옮겨진 자체가 모든 식물의 비극 아니겠냐고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빈 화분 그동안 실어 나른 목숨이 몇이었는지 모르지만 생각하면 나를 옮겨 담은 화분도 아득하다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쳤던 가족, 학교, 군대, 사랑, 일터, 오 대~한민국! 결국엔 우리 모두 지구 위에 심어졌다는 생각 목숨 붙은 걸 함부로 맡는 법 아니라는데 어찌하여 우리는 겁도 없이 생을 물려받고 또 물려주는지 빈 화분 그 오랜 공명이 아직 씨 뿌리지 못한 빈 몸을 울리고 지나간다 어찌하여 화분은 화분이 되었는지 *시집, 메롱메롱 은주, 문학과지성 생명이 밉다 - 김점용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

한줄 詩 2018.04.25

봄날, 오후 4시쯤의 사유 - 이자규

봄날, 오후 4시쯤의 사유 - 이자규 칼 빛보다 시린 세월 사십대가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의 장년시대라면 되겠는가 저문 고속도로 주변 폐차 서너 대 흉물스런 몰골이다 지천명 넘어 생각이 시간보다 힘이 센 석양쯤의 나그네 썩은 고목의 반쪽에서 돋아난 새잎을 외면 말자고 병든 아이들 등에 업고 시리게 너는 와서 하늘을 찌를 듯한 검초록을 서방 삼아 온 산천에 불지르고 질펀하게 농익었던 가을 더 열렬한 연애를 위해 자식들을 다 떠나보낸 겨울나무 더 아프기 전에 노래 불러야, 더 마르기 전에 울어야, 깨어 있는 지금은 오후 4시, 아직은 인생의 극광이므로 *시집, 돌과 나비, 서정시학 초록증후군 - 이자규 어찌하여 발목이며 배꼽까지 감추고 향기의 흉내만 내고 있는지 하늘로 머리 둔 것들 주름진 손등 위로 샛강..

한줄 詩 2018.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