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후회할 게 없다 - 박세현

마루안 2018. 4. 29. 21:43



후회할 게 없다 - 박세현




봄이면 살구나무 밑에서
싱숭생숭
수상하게 두근거렸다
여름
여름이면 뜨거운 해변에 소낙비 내리고
가슴마다 천둥쳤다 박수쳤다
가을
가을이면 하늘은 멀리 달아나고
마음은 마음대로 높고 분주했다
기도하듯 엎드려 가계부를 쓰기도 했다
겨울
펑펑 눈 내리는 골목을 걸어갔다
혼자? 아니 나 빼고 혼자!
나를 위해 창 열고 청소하고
음악 들었을 것이라 넘겨짚으면 팔 부러진다
내 몸에 차고 넘치는 기쁨
내 몸에 차고 넘치는 슬픔의 틈바구니에서
원없이 외로웠으니
나는 후회할 게 없었다는 전설



*시집, 아무것도 아닌 남자, 오비올프레스








봄밤 - 박세현



경적없는 소형차가
고속도로를 달려간다
어디로 가시는가
질문은 힘이 없지만
질주는 당당하다
밤이 지날수록 안개는 짙어지고
빗방울은 오락가락이다
가만히 누군가의
삶을 만져본다
나는 살아 있다
이렇게 쓰고 싶은
봄밤





# 시집 뒷표지에 이런 글귀가 눈에 띈다. 시집을 덮은 아쉬움을 달래주는 문구다. 이것도 시다. 긴 여운이 남는....


그만 쓰려는데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는다
누구처럼 자를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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