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내 고막은 젖었거나 슬프다 - 김이하

내 고막은 젖었거나 슬프다 - 김이하 올 여름, 장마의 긴 그림자 속에서 하여간 끊이지 않는 소릴 들었다 그것은 저주파의, 너무 굵고 커서 귓바퀴에는 들어올 수 없는 그런 소리였는데, 젖은 가죽을 긁는 소리 같기도 하고 강이 물고기를 모는 소리도 같았다 혹은 나무가 뿌리를 들어 이파리를 건드리거나 내장이 기어 나와 목을 조이거나 나는, 그치지 않는 빗속에서 종일 귀를 팠고 귀에선 피가 나도 귀지가 잡히지 않는 이런 상스런 하루하루를 보냈다 면봉으로 아무리 귀를 닦아내도 비위를 건드리는 소리는 건져지지 않았다 나를 비웃었던 당신의 긴 울림이 거기 남아 썩어 문드러져 곰팡이나 키웠을 것인가 하여간, 하여간 나는 어둠 깊어도 잠들 수 없었고 밤새 내 귀에 숨어든 소리의 정체를 찾다 빗방울을 헤며 잠들었다, 고..

한줄 詩 2018.07.27

혼자 있게 하는 별 - 전성호

혼자 있게 하는 별 - 전성호 먼 산이 어둠 풀고 나와도 담뱃불 여전히 빨갛다 멀리서 까불거리는 저 새로운 발톱들 다리를 건널 때마다 가로막는 또 다른 발톱 바람은 지혈되지 않고 사랑도 끝내 용서하지 못하는 것 길 잃은 길, 바람이 귀를 막는다 내리막길 왜 뛰었느냐 묻지 말아라 막힌 길 벽 삼아 집을 짓는다 하얀 별빛처럼 까다롭게 발톱이 자란다 버릴 것이냐 더 얻을 것이냐 대답 없는 밤빛을 오징어 씹듯 씹는 *시집, 저녁 풍경이 말을 건네신다. 실천문학사 시간을 이겨내는 그림자 - 전성호 –부산 좌천4동 산 68-5번지 구겨져 흐르는 산동네 슬레이트 지붕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세례를 받아야 빈 병 속의 꽁초들은 떠오른다 고물상의 소망도 그러한가 장맛비에 갇힌 근육의 우울 혼자된 벙어리 치매를 이기기 위해 ..

한줄 詩 2018.07.24

늙은 피부 - 정덕재

늙은 피부 - 정덕재 등 뒤에 달린 어깻죽지를 긁는 게 예전 같지 않다고 하면 나이 탓이라고 답한다 살아온 생애 동안 의자에 기대어 지내거나 집 먼지 진드기를 깔고 이불 위에 누워있거나 시내버스 의자에서 등을 곧추세워 졸았던 시간을 합하면 늙어가는 어깻죽지의 나이는 여든아홉쯤 오른손을 들어 왼 어깨를 긁으면 손톱 밑에 끼는 유전자 감식용 늙은 피부가 바게뜨 빵가루처럼 바삭거린다 끝내 가려움에 닿지 못하는 마지막 5센티미터 지점에서 갈증난 피부가 삶을 조각내고 있다 *시집.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시와에세이 출근 1시간 전에 출근길을 생각함 - 정덕재 자고 있지 않으면 주차장에서 차를 막고 있는 차를 밀지 않으면 콩나물국밥으로 해장을 하고 있을 것이다 끼어드는 차가 있다면 차간거리를 좁히는 밴댕이 소갈딱..

한줄 詩 2018.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