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늙은 피부 - 정덕재

마루안 2018. 7. 20. 20:36

 

 

늙은 피부 - 정덕재


등 뒤에 달린 어깻죽지를
긁는 게 예전 같지 않다고 하면
나이 탓이라고 답한다

살아온 생애 동안
의자에 기대어 지내거나
집 먼지 진드기를 깔고 이불 위에 누워있거나
시내버스 의자에서
등을 곧추세워 졸았던 시간을 합하면
늙어가는 어깻죽지의
나이는 여든아홉쯤
오른손을 들어 왼 어깨를 긁으면
손톱 밑에 끼는
유전자 감식용 늙은 피부가
바게뜨 빵가루처럼 바삭거린다

끝내 가려움에 닿지 못하는
마지막 5센티미터 지점에서
갈증난 피부가
삶을 조각내고 있다


*시집.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시와에세이

 

 




출근 1시간 전에 출근길을 생각함 - 정덕재


자고 있지 않으면
주차장에서 차를 막고 있는 차를 밀지 않으면
콩나물국밥으로 해장을 하고 있을 것이다
끼어드는 차가 있다면
차간거리를 좁히는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짓을 하며
횡단보도 앞 미니스커트 입은 배나온 아줌마를
흘낏 쳐다보고
지나가다 백미러로 다시 한번 볼 것이다
두 번 동안 신호가 바뀌어도
네거리를 지나가지 못해
창문을 열고 가래침을 뱉다
화장하는 여자 운전자와 눈을 마주칠 것이다
라디오 뉴스를 듣다
씨팔놈들이라는 욕을 장단 맞추며
주파수를 바꿀 것이다
버스전용차로에 끼어들었다
단속차량이 오는 것을 확인하고
재빠르게 차선을 바꿀 것이다
육교 위에 걸려있는 클래식 연주회 현수막을 보다
바이올린 줄이 몇 줄인가
첼로 줄과 비올라 줄의 숫자는 같은가
줄 위의 인생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무뇌아처럼 출근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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