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초점 흐린 거리 - 이성배

초점 흐린 거리 - 이성배 여름 저녁 골목은 현상액에서 방금 꺼낸 흑백사진처럼 축축했다. 리어카 두 대가 좁은 골목을 아슬아슬 비켜간다. 한쪽 다리를 저는 노인은 리어카를 밀고 허리가 심하게 굽은 노인은 리어카를 끌고 간다. 서로 폐지를 주운 골목의 방향은 노출에 실패한 사진처럼 충분히 어두워지고 있다. 컵라면 한 끼와 폐지 몇 킬로그램이 삶의 총량이 될 수도 있다. 얼마 후 가로등이 일제히 점등 되는 순간, 리어카의 뒷모습이 보이는 골목은 필름 타래처럼 검게 탈 것이다. 정확히 초점이 맞았다고 믿고 싶을 뿐, 조금 덜 흐릿한 배경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다. *시집/ 희망 수리 중/ 고두미 희망 수리 중 - 이성배 오래된 주택가 골목, 담장 두어 칸 허물고 마당 한쪽에 만든 두 평 식당. 맨 처음은 대부..

한줄 詩 2019.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