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창밖의 남자 - 김병호

마루안 2019. 8. 18. 19:57



창밖의 남자 - 김병호



텅 빈 노래가 지나는 창에

거친 흉터의 바람이 이따금

이마를 찧곤 한다


마음 한 자리가 파여

아주 저물지 못한 사내


멀리 구름이 두꺼워지고

그새 늙은 창이 꽃 진 나무를 어르면

저녁은 멀리 빙하기를 건너온다


창밖의 사내가 품고 온 어둠에

가만히 손을 대어본다

손끝에서 활활 타오르는 맹랑한 아픔


우주의 깜깜한 사막을 건너는

어지러운 흙발자국들이 창에 찍히고


사내가 새로 창을 만드는 동안

짐 부려놓고 돌아가는 늙은 나귀처럼 눈이 내린다

나는 저물지 않는 허공을 한참 거닌다



*시집, 밤새 이상(李箱)을 읽다, 문학수첩








버려진 화분 - 김병호



골목길 한가운데 패 있는

발자국 안으로

구름이 몸을 구기고 들어갑니다


눈발마저 기척을 잠그면

겨울은 밑둥만 남습니다


하루하루 늙어가는 일로

자신을 달래는 사내


먼 곳의 희미한 대답들

마저 울지 못한 울음을 오려냅니다


사내의 지갑엔 멀리 두고 온

아이의 사진 한 장

묽은 얼룩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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