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아는 병은 괜찮은가 - 정다운

마루안 2019. 8. 12. 21:59



아는 병은 괜찮은가 - 정다운



살이 7킬로가 빠져 집에서도 기절한 적이 있었다
나만 하는 게 아니니 자랑할 만한 입덧은 아니었다


병문안을 오래서 갔더니 말라빠진 나를 보고
환자가 그랬다 넌 아는 병이니 괜찮다


학력 직업 너의 구부정한 등이 맘에 들지 않고
내향성 발톱이 네 성격만큼이나 유별나다고 했던 사람이다


장염 혈변 6인용 병실 때문에 죽겠다는 당신은
무엇을 몰라서 그토록 안 괜찮은가 물었다


남이 봐줘야 인정받을 고통이라면
남의 기아에도 밥을 사 먹일 줄 알라고


본인은 기가 쎄서 속마음이 삐져나오는 건데
넌 조용한 얼굴로 왜 싸가지 없이 말하냔다


너도나도 화장실을 들락거렸으니
내 입이나 당신 꽁꼬나 똑같이 헐었지 않았을까


가져온 봉투를 베개 밑에 넣어 주면서 쉬세요, 했다
돌아오는 추석 땐 감쪽같이 나은 얼굴로
우리 또 만나야 하니까요 부디


괜찮은지 아닌지는 그 사람이 결정하게 두시고
마음속에 있는 말은 마음에게만 하시고



*시집, 파헤치기 쉬운 삶, 파란출판








유전이다 - 정다운



아이는 시간이 지나도 말을 잘 못하고
엄마는 이제부터 그러기로 한 모양이다
또박또박 말해 주면 좋을 텐데
내 혀만 내 것이다


물려준 건 젖뿐이었다
먹다 남긴 것은 고여 썩었지만
도려낼 때까지 모른다
있을 때는 모르고 떠날 때 맡아지는 냄새처럼
계속 성가셨던 무엇의 얼굴을
이제야 보게 될 것이다


병원에서 돌아와 현관에 주저앉았다
아이가 내 등에 기대 온다
너는 내 무엇을 믿고 살래
그저 빨아먹겠지 잠들겠지
이빨이 나서도 잠꼬대처럼 허공을 누르다가
갑자기 네 손이 부끄러워지겠지
나도 안다


니네 할머니가 쓰러졌다
말을 잘하지 못하게 되었다 너처럼
아이는 언제부터 쥐고 있었는지 모를 사과 조각을 입에 넣어 준다
네 손맛이 난다
미지근하고
사람을 길러 내는 온도란 이렇게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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