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사람 그리는 노래 송승언

사람 그리는 노래 송승언 정원으로 이어지는 여러 갈래의 길에는 신도들이 늘어서 있고 신앙심을 시험하려는 듯이 줄줄이 대기열을 만들고 혀를 내밀고 있다 혀끝에서 신속히 흩어지는 것 없었던 듯 새겨지는 것 그것을 위해 나는 항상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낯가죽을 새롭게 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혀를 내밀며 드는 생각은 이것 나는 대체 어떤 종류의 인간인가? 여러 갈래의 길로 이어지는 정원에 서서 향나무의 뒤틀림에 경탄했다 저렇게 뒤틀릴 수만 있다면 개발 중인 신도 두렵지 않을 텐데 비늘조각이 육질화 된 향나무를 보며 향나무 좋지.... 나도 좋아해 말씀하시던 신부님은 맥주 마시러 갔고 나는 이제 내 팔다리의 멀쩡함을 입증하기 위해 뇌에 대타격을 입은 사람의 말을 빌려 쓴다 탁구 하던 사람 술집 하다가 망한 그 사람..

한줄 詩 2020.03.19

한 뼘의 여유 - 최정

한 뼘의 여유 - 최정 추락하기 직전 날개 돋는 기적 같은 삶이란 가능한 일인가 눈길 오르막에서 트럭은 정비소에 맡겨졌다 뜻하지 않게 강원도 산중에서 일주일이나 더 발이 묶였다 그러고 보면 내 인생도 뜻하지 않게 여기까지 굴러왔다 한쪽 뒷바퀴가 남겨준 낭떠러지 한 뼘의 짜릿한 여유를 이제껏 모르고 살아왔다 잠시 미끄러졌을 뿐인데 벼랑으로 밀려날까 두려워 미리 겁먹었다 슬쩍 눈 감고 살았다 *시집, 푸른 돌밭, 한티재 돌탑 - 최정 하고많은 땅 중에 돌밭 주인이 된 것은 숙명일지도 몰라 농사의 시작은 끝을 치르는 나만의 무슨 중요한 의식처럼 또 큰 돌을 주워낸다 돌을 주워낼 때마다 왜 무작정 속죄하는 마음이 드는 걸까 먹고살겠다고 이 땅에 흘린 허물 주워 담는 기분이 드는 걸까 차갑고 모난 돌들도 서로 등..

한줄 詩 2020.03.15

먼 항구를 그렸던 그림 - 정윤천

먼 항구를 그렸던 그림 - 정윤천 불쑥불쑥 나타나 팔짱을 걸어 주고 하였던 아이는 외가 쪽의 먼 피붙이였다 별들이 이마 위로 가장 가까이 내려앉은 계절이었다 외가 마을의 미루나무 너머로는 내가 살폈던 목측(目測)의 한계보다 먼 데로 석양이 지고 있었다 산딸향이 들켜오던 저녁이 오고 있었다 아이에게 건네주어야 할 그림의 제목을 정하여 나온 날이었다 아이의 눈 속으로 등대의 불빛 같은 눈물별이 하나 지고 있었다 아이는 내 그림 속에 그려진 그림의 내용을 물어 주었다 항구와도 같았던 데를 그려 넣었던 그림이었기에 항구가 그려진 그림이라고 일러주었다. *시집, 발해로 가는 저녁, 도서출판 달을쏘다 근황 - 정윤천 맹물에 국수를 말아먹은 과거가 있다 국수의 추억은 가늘고 밍밍하여 팔리지 않는 요즘의 시집들과 닮았..

한줄 詩 2020.03.15

쓸쓸한 나라의 씁쓸한 - 김형로

쓸쓸한 나라의 씁쓸한 - 김형로 혼자 먹는 밥은 동굴만큼 어둑해서 밥 한술에 국물 한술 내 몸의 기나긴 울력은 갈상갈상하다 동탯국은 맛있었던가 자작한 국물, 마저 마시려 기울이다 미끈, 내 입에 부딪힌 또 다른 입 하나 순간 본, 우멍한 구멍 얼었다가 끓었다가 육신은 이산(離散) 하고, 아직 볼 것이 남아 있다는 눈인가 닫지 못한 입과 쓸 만한 이를 번득이며 다가온, 검고 긴 한 생의 입구 그 입들, 먹고 산 구멍들, 그 어둑한 허기들, 너너 나나 한줄기 컴컴한 생이라는 쓸쓸한 나라의 씁쓸한, *시집, 미륵을 묻다, 도서출판 신생 부전동에 가시거든 - 김형로 조심하세요 그곳에는 산전수전 고수들이 많습니다 짜장이나 짬뽕 한 그릇 시켜놓고 소주 한 병은 뚝딱!이지요 밥과 안주의 경계를 허무는 형님들 아랫턱 ..

한줄 詩 2020.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