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라면에는 없는 것 - 권상진

마루안 2020. 3. 15. 22:01



라면에는 없는 것 - 권상진 



이걸 밥상이라고 불러도 되나


냄비 하나 

젓가락 한 벌

김치 한 조각 


혼자는 쓸쓸하니

어둠이 오면 저녁으로 한 개

새벽을 기다려 아침으로 한 개

딱히 올 이 없는 점심은 언제나 헛속이었다


부스럭


빈 라면 봉지 밟고 사라진 

길고양이 얼굴이라도 한번 봤으면 싶어

열치는 문 앞을 

헛것으로 달려오는 손주 녀석들


인스턴트 음식은 안멕인다 하였으니

라면은 뒀다가 혼자 먹고 

내일은 유기농 소고깃국 끓인다고

전화라도 넣어볼까 망설여지는 저녁



*시집, 눈물 이후, 시산맥사








집밥 - 권상진 



혼자 먹는 밥은 해결의 대상이다 


두어 바퀴째 식당가를 돌다가 알게 된 사실은

돈보다 용기가 더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


매일 드나들지만 언제나 마뜩잖은 맛집 골목을 

막차처럼 빈속으로 돌아 나올 때 

아이와 아내가 먹고 남은 밥과 김치 몇조각에

나는 낯선 식구이지나 않을는지


늦을 거면 밥은 해결하고 오라는 아내의 목소리가

걱정인지 짜증인지

가로수 꽃점이라도 쳐보고 싶은 저녁


불편한 약속처럼 나를 기다리는 골목 분식집 

연속극을 보다가 반갑게 일어서는 저이도

누군가의 아내이겠다 싶어

손쉬운 라면 한 그릇에

아내와 여주인을 해결하고 나면

어느새 든든해 오는 마음 한편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구내식당 

저녁 내내 간절하던 집밥은

그래, 쉬는 날 먹으면 된다






# 전대미문의 코로나 사태로 유럽과 미국에서 사재기 행렬이 이어진다는 외신 보도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 저들도 살고 싶은 거구나. 점심으로 라면을 먹었다. 라면 한 봉지에 양파 조금, 두부 한 조각, 버섯 두 개, 파송송 계란 탁, 라면의 완성이다. 이것은 집밥이다. 한 그릇의 라면도 황홀하게 받는 것, 그리고 감사하게 먹는다. 이렇게 먹을 수 있다는 것, 라면에 있는 것은 살아 있는 고마움과 살고 싶은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