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건널목을 건너는 순간 - 이시백

마루안 2020. 3. 12. 19:17



건널목을 건너는 순간 - 이시백



아이들을 자주 만나지 못해도
멀리 있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세탁물을 한번 넣으면
가리지 않고 돌아간다


나는 통닭을 좋아하는데
아이들도 통닭을 좋아한다


버스가 세탁기 소리를 내며
지날 때
긴 머리에 안경을 쓴 소녀


짧은 순간
딸내미의 얼굴이 스치고
나는 아현동 통닭집을 떠올린다


밀린 빨래를 해야겠다



*시집, 아름다운 순간, 북인








봄소식 - 이시백



별거한 후로
처갓집 근처에서 가끔
만나는 딸, 저녁에 만나
고기를 먹자 했더니


친구랑 가본 적이 있다는
곳으로 안내한다


상호는 '불타는 고깃집'


돼지목살과 국수를 주문하고
연탄불을 가까이 두고 앉아
짧은 침묵이 흐른다


긴 연통을 비켜 앉는 딸


'왜 의자가 불편하니?'
'아니, 아빠 얼굴이 안 보여서'


연탄불은 서서히 달뜨고
딸과 마주 앉은 애비


침묵을 먼저 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