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아름다운 세상 - 박인식

아름다운 세상 - 박인식 낙타와 순록은 무슨 까닭에 사람을 이토록 깍듯이 모시는가 조물주의 간곡한 당부가 있었던 걸까 그들이 없었다면 남자들은 낙타가 되고 여자들은 순록이 되어야 했기에 사람은 사람이 될 수 없지 않았을까 전 남자인 낙타는 전 여자인 순록을 등에 태워 사막을 건너고 전 여자인 순록은 전 남자인 낙타에게 뿔 잡혀 설원을 건너고 사람이 낙타와 순록으로 진화한 그 아름다운 세상에서 아마도 *시집/ 러빙 고흐 버닝 고흐/ 여름언덕 러빙 고흐 버닝 고흐 - 박인식 반 고흐는 을 두 점 그렸다. 한 점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걸려 있고 다른 한 점은 행방을 알 수 없다가 고흐 사후 100년째 된 1990년 뉴욕의 어느 경매장에 나왔다. 한 일본인이 천억 원에 가까운 8250만 달러에 낙찰받았다. 생..

한줄 詩 2020.02.17

낙조 - 조성순

낙조 - 조성순 입춘 갓 지나 바람이 아직 찬데 탑골공원 부근 비아그라 일라그라 자이데나 가짜 정력제 늘비한 만물상 앞 얼굴 주름이 굵은 밭고랑으로 팬 늙은 오빠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꼬깃꼬깃한 지폐 건네고 무언가 받아 급히 주머니에 감춘다. 녹색 신호 받아 건너는 발걸음이 쿵, 쿵, 전쟁터로 나가는 대장군이다. 구부정한 어깨가 눈보라 몰아치는 산맥 같다. *시집, 가자미식해를 기다리는 동안, KM 너도바람꽃 - 조성순 군대 가서 첫 휴가 받아 휴가증 고이 접어 가슴에 넣고 한껏 들뜬 마음으로 용산역에서 고향 가는 표를 사려고 길게 늘어진 줄 꼬리에 서 있었지. 근데 어디선가 갑자기 돌개바람이 휙, 모자를 낚아채 가지 뭐야. 모자를 잃어버리고 중대가리로 돌아다니는 군인은 탈영병이거나 무적의 싸이코패스야...

한줄 詩 2020.02.12

다몽(多夢) - 문저온

다몽(多夢) - 문저온 :지나치게 꿈을 많이 꿈. 영혼의 피로한 발바닥. ​ 불면과 다몽 중에 고르라면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그가 묻는다. 결핍과 과잉 중에 무엇을? 틀렸습니다. 과잉과 과잉이지요, 말하자면. 뜬 눈과 감은 눈의 차이일 뿐입니다. 필름은 돌아가지요, 밤새. 단독 관객, 단독 상영입니다. 티켓은 없어요. 발권하더라도 무작위니까요. 극중극, 옴니버스, 컬트와 호러를 넘나들지요. 밑도 끝도 없는 상상력이 추진력입니다. 더블 캐스팅은 다반사. 급할 땐 머리만 바꿔 달고 등장해요. 의식과 무의식은 끝 간 데 없이 전진하고, 그것은 둘 다 밤만이 줄 수 있는 증상입니다. 내려 닫아 잠그고 싶은 눈꺼풀이 기어이 말려 올라가는 뻑뻑한 눈알. 치켜떠서 빠져나오고 싶으나 혼몽의 늪을 허우적대는 납 같은 ..

한줄 詩 2020.02.09

바다 바라보는 법 - 박대성

바다 바라보는 법 - 박대성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 사는 일은 한때 뜨개질을 좋아했고 한때 사과를 좋아했고 한때 봄을 좋아하던 사람과 사는 일은 바다로 가는 일 오래라는 것이 모래라는 것을 알게 될 때쯤 살아온 날들이 모래 더미라는 것을 알게 될 때쯤 그 사람이 파도라는 것을 알게 되는 일이라고 같이 사는 일은 파도가 되는 일이라고 함께 바다가 되는 일이라고 바다가 보이는 데에 올라 모래들의 푸른 작문을 읽는 일이라고 아주 오래전 갈매기가 되고 싶었을 사람을 내가 여직 붙들고 있는 일이라고 산다는 것은 바다로 가는 일 오래된 사람을 바다로 데려다주는 일 그 사람을 갈매기로 날려 주는 일 갈매기 날게 해주는 일이라고 시집/ 아버지, 액자는 따스한가요/ 황금알 동명동 터미널 아리아 - 박대성 예쯤 온 사람들은..

한줄 詩 2020.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