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내 아버지들의 자서전 - 오도엽, 이현석

마루안 2018. 8. 3. 21:41

 

 

 

많은 아버지 중에 몸으로 익혀 배운 기술로 가족을 부양한 아버지는 더 위대하다. 여기에 기록한 아버지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세탁소, 대장간, 구둣방, 양복점, 시계공, 사진공, 전파사 등, 지금은 사라져가는 직업을 평생의 밥벌이로 삼은 사람들의 기록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 어떤 傳記보다 감동적이었다.

그들 스스로가 기록한 것이 아닌 시인이 묻혀있는 장인들을 찾아다니며 가슴으로 쓴 기록이기에 더욱 값진 책이다. 그래서 오도엽 시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방향이 가슴에 와닿는다. 많은 아버지들이 그랬듯 이 책에 언급된 아버지들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밥벌이에 나서야 했다.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못했으니 번듯한 직장을 얻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기술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보수도 받지 않고 그저 먹고 자는 것만 해결되면 조건없이 일을 했다. 도제식 교육으로 어깨 너머로 배운 눈물 묻은 기술은 그들의 평생 밥벌이가 되었다. 특별한 조명을 받은 일 없이 묵묵히 살기 위해 자리를 지키다 보니 몸에 밴 기술이 기계보다 정교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자식들 키우고 가르치며 살다 보니 일생이 지났다. 그들의 한평생이 위대한 이유다. 나는 그들의 인생이 비주류여서 더욱 애틋하다. 머리 좋은 판검사들이나 정치인들이 좋은 교육을 받은 탓에 펜대를 굴리며 살 때 이 책의 아버지들은 손가락이 찍히고 지문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험한 노동을 했다.

이 책에 나온 일부를 옮기면 오전 일을 마친 노동자들이 <공장 바닥에 상을 펴고, 주문한 동태찌개 2인분과 오징어볶음 1인분을 올린다. 네 명의 대장장이가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다. 포장된 밥과 라면을 뜯어 3인분의 식탁을 진수성찬으로 탈바꿈시켰다. 그 순간 밥, 밥을 위한 노동보다 빛나는 아름다움이 어디 있으랴>.

이 책에는 몸으로 세상을 헤쳐나갔던 고단한 노동자의 일생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가난 때문에 교육을 받지 못했고 먹고 살기 위해 노동을 해야 했으며 어쩌다 보니 이런 직업을 갖게 되었지만 그들은 평생을 정직한 노동으로 밥을 먹은 사람들이다. 그 어떤 정치인의 자서전보다 이들의 일생이 훨씬 고귀하다. 좋은 책이 바로 이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