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존엄한 죽음 - 최철주

마루안 2018. 7. 23. 23:12

 

 

 

존엄사에 관한 진지한 책이다. 저자인 최철주 선생은 아내와 딸을 암으로 잇따라 잃었다. 그후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고 웰 다잉 강의를 하기도 했다.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시한부 가족을 편안하게 보내준 경험을 잘 기술했다.

아들에게도 자신이 작성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보여주며 아내와 딸처럼 고통 없이 떠나고 싶은 실천 의지를 보였다. 나도 연명의료로 생명 연장을 할 생각이 없다. 이 단어가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도 이 용어가 입에 붙지 않은 것도 그 이유다.

좀 더 짧고 쉬운 단어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누군들 하루라도 더 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의식도 없는 사람에게 온갖 의료 장치로 생명을 연장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환자나 가족이나 소생 가망이 없다면 고통 없이 삶을 마감하게 하는 것이 낫다.

존엄한 죽음이란 애초에 완성 되기 힘든 단어다. 그러나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우주의 진리다. 그걸 받아들이고 불필요한 의료행위를 받지 않을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사전의료의향서다. "내가 의식이 없더라도 편히 가게 해 주세요." 그걸 작성하지 않아 응급실에서 벌어진 일을 저자는 이렇게 기술한다.

<죽음에 대비한 환자의 의사표시가 없는 것을 확인한 의료진은 규정된 절차에 따라 그에게 인공호흡기를 부착했다. 호흡이 가팔라질 때면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느라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곤 했다. 그도 어쩔 수 없이 연명의료하는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자연의 섭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별개의 고행 길이 이어지고 인간의 권위나 존엄마저 거둬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지 모르겠다.>

연명의료를 중단하고 죽음을 받아들인 환자들이 머무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벌어지는 풍경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하긴 아무리 모든 걸 비우고 이곳에 왔더라도 죽음을 앞둔 생의 마지막 풍경이 늘 평화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환자가 생을 마감한 후에 방을 청소하고 냉장고를 정리할 때면 온갖 약들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온다고 한다. 호스피스 병동에 환자가 입원할 때 어떤 의료 행위도 받지 않겠다는 서약을 한다. 그저 환자가 통증이 심할 때 진통제를 투여하는 정도다.

그런데도 그들은 호스피스 병동에 머무는 동안 마음이 변해 살고자 하는 본능을 발휘한다. 친척들이 가져다 준 별별 희한한 약들을 숨기고 먹는다. 정체 불명의 환약, 심지어 뱅탕까지 나온단다. 살고 싶은 마음에 몰래 숨겨 놓고 복용하다 삶을 마감한 것이다.

저자는 먼 친척 증후군이라는 것 때문에 풍파가 일어나는 것을 경계하라고 충고한다.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음을 인정하고 들어온 호스피스 병동에 위문이랍시고 와서 온갖 말들을 늘어 놓고 간다는 것이다. 당연 환자는 귀가 솔깃해지고 병구완에 지친 가족은 허탈감에 빠진다.

먼 친척들은 환자에 대한 책임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독약이다. 아무말 없이 그저 환자의 손을 꼭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작별 인사는 충분하다. 무섭고 싫지만 죽음은 늘 가까이에 있다. 마음 비우기에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