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사춘(思春) - 서상만 시집

마루안 2018. 7. 7. 22:01

 

 

 

사춘(思春)은 서상만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이다. 나는 얼마전부터 이 시인의 시에 흠뻑 빠졌다. 지나간 시집을 다시 들추며 시의 궤적을 따라 가기도 한다. 서상만 시인은 1941년 생이니 우리 나이로 78세다. 그냥 뭉뚱그려 팔순이라 해도 되겠다.

책 읽고 감상 쓰는 이곳에 굳이 시인의 나이를 들먹이는 이유는 굉장히 톡특한 이력 때문이다. 선생은 불혹을 넘긴 1982년에 등단했는데 그러고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시를 발표하지 않았다. 롯데제과 부산지사장, 한일제관(주) 이사, 롯데칠성음료(주) 이사를 역임했고 은퇴 후에야 본격적인 시를 발표한다.

내가 처음 시인의 시집을 읽은 것은 천년의시작에서 나온 <그림자를 태우다>였다. 서상만 시인을 알고 있었다기보다 천년의시작이 괜찮은 시집을 발간하는 출판사였기 때문이다. 칠순의 나이에 나온 시집은 꽤 감동적이었다. 시인과의 인연의 시작이다.

이후 시인은 거의 매년 한 권씩 시집을 낼 정도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걸 두고 대기만성이라 하던가. 그동안 낸 시집을 보면 <시간의 사금파리, 2007>, <그림자를 태우다, 2010>, <모래알로 울다, 2011>, <적소適所, 2013>, <백동나비, 2014>, <분월포, 2015>, <노을 밥상, 2016>, <사춘思春, 2017>까지 거의 매년 시집을 냈다.

나는 첫 시집인 시간의 사금파리 빼고 모든 시집을 읽었다. 마음에 들어오는 시인이 있으면 집중적으로 읽는 편인데 서상만 시인이 그렇다. 첫 시집 나오고 10년 동안 시인이 8권의 시집을 남발(?)하는데도 완성도가 일정하다는 거다. 아마도 오랜 시간 가슴에 담고 있던 것이 이제야 작정하고 나오기 시작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춘은 그 중에서도 꼽고 싶은 시집이다. 일단 시가 쉽다. 그리고 잘 정선된 싯구에 눈길이 머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또 같은 시도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든다. 두세 번 반복해서 읽다 보면 시가 이렇게 매력적인 문학임을 실감한다.

요즘 시가 안 읽힌다는데도 시인은 넘쳐 난다. 아마 이 땅에서 사장 다음으로 많은 사람이 시인일 거다. 인사동 거리에서 사장님 하니 몇 사람 돌아보는데 시인님 하니까 절반 이상 돌아봤다나? 스스로 시인을 자처하면서 시를 싸구려 문학으로 몰아 녛고 있다.

자기가 좋아 시인이라는데야 어쩌겠는가. 문제는 시인은 넘쳐나는데 읽을 만한 시가 없다는 거다. 나 같은 아마추어가 문학의 심오한 결정체인 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면 할 말은 없다. 아는 것 만큼 보이고 보인 만큼 느낀다는데 시도 그러면 안되나?

독자들이야 읽든가 말든가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시집들 중에 이 시집은 단연 돋보인다. 시를 읽고 난 뒤 긴 여운과 함께 향기가 남는 시들로 가득하다. 평론가 유성호의 해설도 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는 선생의 세 번째 시집인 모래알로 울다에서도 해설을 했다.

출판사 <책 만드는 집>은 시집 하면 떠오르는 메이저 출판사가 아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100권 남짓의 시집을 출간했다. 나름 시를 열심히 읽는다는 나도 자주 접하는 출판사는 아니다. 낭중지추라고 좋은 시는 언제든 발견되게 마련이다.

서상만 시인은 오랜 병치레 끝에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품고 산다. 시를 읽다 보면 곳곳에서 먼저 떠난 아내를 향한 사무친 그리움을 느낄 수 있다. 많은 것을 잃어가는 노년의 풍경을 다룬 깊이 있는 시들도 인상 깊다. 다소 어둡고 쓸쓸하면서 서정성 짙은 시들이 실컷 울고 난 후의 개운함처럼 마음을 정화시킨다.

사랑도 사무치면 이렇게 영롱하게 빛나는 시로 승화되는 것일까. 사춘이라는 제목이 시를 소비하는 젊은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거나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격조 있는 고급시가 제목을 충분히 커버한다. 느즈막에 활짝 핀 선생의 시심이 오래 갔으면 한다. 시인은 틀림없이 눈물 많은 소년처럼 맑은 영혼을 가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