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고기로 태어나서 - 한승태

마루안 2018. 7. 19. 22:41

 

 

 

미증유의 삼복더위에 좋은 책을 읽은 뒤가 참 개운하다. 책 내용이 개운하다는 말은 아니다. 있지만 잘 안 보이는 분야를 스스로 뛰어들어 발로 쓴 르포가 생생하게 전달되어 불편함이 남는다. 그런대도 개운하다는 것은 이런 작가의 발굴이 반갑기 때문이다.

<고기로 태어나서>라는 이색적이고 섬뜻한 제목부터 시선을 사로 잡는다. 몇 년전에 읽었던 전작이 밑바닥 노동에 관한 체험기로 나를 사로 잡았다. 당시 이런 책은 다시 나오지 않을 줄 알았다. 글도 아주 잘 쓴다. 소설과 르포와 신문기사를 적절하게 배합해서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췄다고 할까.

<시대의 창>이라는 다소 거창한 이름의 출판사가 좋은 책을 많이 낸다. 같은 출판사라도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드루킹 같은 구더기 생기는 곳이 있는 반면 좋은 책을 내기 위한 노력이 엿보이는 이런 출판사 사람들은 밥 먹을 자격이 있다.

저자 한승태 작가는 본명은 아니고 필명이다. 프로필도 명확하게 밝히지를 않고 있는데 지방의 한 대학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했고 공무원 시헙을 준비하기도 했다고 한다. 당연 고시촌에서 살며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가 체험한 농장은 양계장, 양돈장, 개농장이다. 이 노동으로 밥을 벌기 위한 목적보다는 책을 쓰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동물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되고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보다 심해서 고기를 먹기 미안해질 정도다. 나는 고기를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먹는다. 채식을 더 좋아하긴 한다. 동물성 식품도 육류보다 어류를 더 좋아한다.

양계장에서 닭을 길러 일부는 고기로 팔고 달걀을 낳으면 계란을 팔다가 산란 기능이 떨어지면 고기로 파는 줄 알았는데 완전 빗나갔다. 옛날의 시골에서는 그랬으니까. 현재는 알을 낳는 산란계와 고기를 생산하는 비육계로 완전 분류가 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가 경험한 내용이 적나라하게 나온다. 가령 산란계장에서는 막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를 암수 구분을 한 후 수놈 병아리는 산채로 비료배합장으로 들어가 비료가 된다. 그곳에서 알을 못 낳는 수놈은 쓸모 없는 것이다. 커서 알을 낳더라도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작은 알이나 기형알을 계속 낳으면 바로 퇴출된다.

돼지도 마찬가지다. 돼지 농장 이야기는 작가의 전작인 <인간의 조건>에서 언급한 분야이기도 하다. 새끼만 주구장창 낳는 돼지가 있다. 수퇘지 정액을 주입해서 임신을 시켜 새끼를 낳고 젖을 떼기가 무섭게 새끼들은 집단 사육장으로 옮겨지고 얼마 후 다시 어미 돼지는 수퇘지의 정액을 주입 받는다. 말 그대로 돼지 낳은 공장이다.

좁은 케이지에 갇혀 새끼만 낳다가 임신을 하지 못하거나 새끼는 많이 낳지 못하면 바로 퇴출된다. 닭이나 돼지나 퇴출이란 말은 죽인다는 말이다. 산란계의 양계장처럼 어린 수퇘지가 죽임을 당하지는 않는다. 대신 고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거세를 한다.

새끼 돼지 뒷다리를 바짝 앞쪽으로 당겨서 튀어나온 고환을 11자로 형태로 칼로 가른 후 손으로 눌러 엄지 손톱만한 고환을 축출한다. 마취도 없이 실행하는 이 조치를 당할 때 아기 돼지는 통증으로 죽는다며 비명을 지른다. 실제 거세된 수퇘지 고기는 부드럽고 누린내도 많지 않아 가격도 제값에 팔린다고 한다.

개농장은 다소 충격적이다. 닭이나 돼지는 옥수수 사료를 먹인다. 그래서 사료만 축내는 장애닭이나 돼지는 바로 퇴출시킨다. 개는 음식점에서 나오는 음식쓰레기를 갈아서 먹인다. 가정에서도 음식쓰레기가 나오는데 대형 식당이나 예식장, 호텔, 학교급식당 등에서 나오는 음식쓰레기는 처리가 골치다.

그래서 이런 업체들은 돈을 주고 쓰레기 처리업체와 계약을 하는데 바로 개 사육장이 상당하다. 돈을 받으면서 음식 쓰레기를 실어와 불순물을 골라낸 한 후 갈아서 개에게 먹인다. 음식물 쓰레기에는 숟가락은 물론 나무젓가락, 이쑤시개, 넵킨, 족발뼈 등 온갖 이물질이 들어있다. 이런 것은 개에게 문제를 일으키기에 앞서 가는 기계가 고장 나기에 골라 낸다.

음식물 쓰레기도 강남에서 나오는 것이 단연 인기란다. 강남이 대형 호텔이 많은 부자 동네이기에 그곳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는 단연 고급(?) 쓰레기다. 한 입만 먹은 돈까스에서부터 남겨서 버려지는 비싼 음식물이 많기 때문이다. 음식물 쓰레기가 개 사료가 되는 과정이 너무 적나라해서 다소 불편한 장면이 연상될 정도라 이 정도로 하겠다.

 젖도 제대로 떼지 못한 강아지가 케이지에 들어가면 죽을 때에야(도살을 위해) 그곳을 나온다. 개 사육장의 케이지가 지면에서 50센티쯤 떨어져 설치가 되어 개들은 평생 땅을 딛지 못한다. 케이지 바닥의 철망 위에서 살다 보니 개 발바닥의 푹신한 부분이 항상 뻘겋게 부어 있다고 한다. 음식 쓰레기를 갈아 만든 죽 같은 사료를 먹고 살다 죽을 때가 되서야 케이지를 나온다.

양승태 작가의 글에 의하면 이렇게 개 사육장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나름의 사연과 목적이 있다. 그렇다고 고기를 먹지 말자고 선동하지도 않는다. 동물뿐 아니라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애환도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인은 거의 없고 대부분 말도 통하지 않는 동남아 이주 노동자거나 조선족들이다.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급여를 받으며 농장 한쪽에서 생활하는 노동자들의 삶도 그리 밝지는 않다. 실제로 이런 곳에서는 최저 임금을 적용받지 않는 예외 규정이 있다. 그래도 코리안 드림을 가슴에 담고 묵묵히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많다. 이 책에서 언급한 동물 복지에 관한 기사를 옮긴다. 참 진퇴양난이다.

동물복지는 필연적으로 생산비 상승으로 소비자 가격도 오르게 된다. 우리나라에 동물복지가 도입되면 돼지고기는 17-53% 쇠고기는 34-95% 닭고기는 16-51% 오를 것으로 추정한 연구가 있다. 또한 동물복지형 축산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필요 토지 면적이 지금보다 두세배 넓어져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기준으로 고기를 공급하기위해 소 267만 마리, 젖소 41만 마리, 돼지 1019만 마리, 닭 1억 6413만 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수입도 한다. 같은 기간 쇠고기 30만 톤, 돼지고기 36만 톤, 닭고기 12만 톤을 수입했다. 우리나라는 산란계의 1%만이 동물 복지 농장에서 사육되고 있으면 돼지는 0.3%, 한우나 육우는 한 마리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