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인가? 김점용 시인이 아프다는 뉴스를 들었다. 뇌종양 수술을 받고 회복과 치료를 반복하며 투병 중이라는 소식에 시인의 시를 찾아서 다시 읽었다. 내 일기장 같은 이곳에도 여러 시가 올려져 있다. 공감한 시를 저장했다 틈틈히 읽기 위한 곳이 있어 다행이다.
평소에도 연락 오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코로나 때문인지 내가 잘 움직이지 않으니 연락들 또한 뜸하다. 요즘은 지인들 안부 문자보다 재난 문자가 더 많이 온다. 재난 문자 울림이 없었다면 폰이 꺼져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망할 놈의 코로나 때문에 외부 활동이 줄어든 탓에 책 읽을 시간은 늘었다. 이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김점용 시인의 시집 발간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가 구입했다. <나 혼자 남아 먼 사랑을 하였네>. 제목이 참 좋다. 투병 중인 시인의 현재 상황을 느끼게 하는 제목이다.
예전부터 이 시인의 시를 좋아해서 이름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다. 워낙 뜸하게 시집을 내는 사람이기에 잊고 있었다. 그래도 은근히 기다렸던지 시집 소식에 반색을 했다. 학수고대는 과장이고 학수기대 정도쯤은 된다.
세상에는 시인이 넘쳐나지만 많이 읽기보다 코드가 맞는 시인의 시를 찾아 집중해서 읽는다. 음식은 편식을 안 하지만 시는 편식한다. 시 읽는 능력이 부족한 나의 한계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마음 가는 시를 읽기에도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단숨에 읽고 내려 놓는 시집이 있는 반면에 아껴 가며 읽고 싶은 시집이 있다. 김점용 시집은 아껴 가며 읽고 싶은 시집이다. 근 2주 정도 하루 서너 편씩 꼭꼭 씹어 읽었다. 이것은 시집이면서 詩汁이다.
평론가 오형엽은 김점용의 첫 번째 시집에서 시인의 시는 비밀스런 사연을 감추고 있는 검은 우물처럼 심연의 깊이를 지녔다고 했다. 이번 시집에도 죽음에 대한 황홀한 탐색은 여전하다.
시종일관 죽음을 이렇게 고급스럽게 주무른 사람이 있었던가. 읽은 뒤끝이 불편하고 우울해서 더 좋다. 진눈깨비 내리는 풍경을 보기 위해 삐걱거리는 창틀을 억지로 미는 느낌이다. 투병 전에 발표한 시를 많이 손질해 실린 것도 보인다.
누구나 일생에서 어떤 변화의 계기가 되는 이전과 이후가 있다. 생사를 넘나든 경험을 했다면 그 이후의 심경은 어떻겠는가. 어느 시인인들 예외가 있을까마는 특히 이 시집은 시인의 시혼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절망을 이겨내고자 하는 역설적 표현이다.
나는 지금 스위스로 가는 비행기 안에 있다
안전벨트도 없고 기내식도 없고 스튜어디스도 없지만
존엄사가 인정되는 삶과 죽음의 중립국
스위스행 비행기 안에 있다
높고 아득한 공중을 날고 있다
*스위스행 비행기 일부
북부역
어딘지 모르게 끝까지 밀려간 느낌
모두가 떠나간 곳에서
꿈도 바닥도 없는 곳
너의 대답도 아무 대책도 없는 곳에서
나 혼자 남아
먼 사랑을 하였네
쏟아지는 눈발 속에서
의정부북부역이 어디냐고 물어도
사람들은 묵묵부답
아무래도 나는
좀 더 북쪽으로 가야할 것 같네
*의정부북부역 부문
1997년에 등단한 시인은 2001년에 첫 시집, 2010년에 두 번째 시집이 나왔다. 딱 10년 단위로 시집을 내서 이 시집이 세 번째다. 언제 또 시인의 시집을 만날 수 있을까. 시인의 말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꼬박 3년을 앓았다. 나도 이제 일어날 때가 되었다.
세 권의 시집으로 나는 이미 그의 시에 중독이 되었다. 그의 시를 읽지 않으면 한동안 금단 현상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모쪼록 투병을 이겨내고 이후의 시집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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