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 - 성프란시스대학 편집위원회

마루안 2020. 12. 23. 22:19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 코로나 때문에 더욱 그렇다. 망할 놈의 코로나, 나쁜 코로나 바이러스다. 일상이 너무 많이 바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얼굴을 가리고 사람을 피하는 것은 켕기는 것이 많은 사람의 행동이었다.

 

이 놈의 코로나가 오래 가기도 한다. 올 초만 해도 몇 달 조심하면 되겠지 했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인내해야 하는가. 그래도 좋은 책이 있어 위로를 받는다.

서점 가서 실물 보고 꼼꼼히 선택하는 편인데 서점 나들이를 하지 않고 몇 권의 책을 주문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책이다.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 제목이 흔한 듯하면서 아주 시적이다. 꽃이나 식물을 세는 단위인 송이와 포기는 언제 들어도 아름답다.

이 책은 노숙자들의 인문학 공부 결과물이다. 언젠가부터 노숙자가 노숙인이 되었다. 바뀐 호칭을 따라 가기는 하지만 나는 者나 人이나 똑 같이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라 생각한다.

 

노무현은 당선자였고 이명박은 당선인이었다. 그때부터 바뀐 당선인이라는 이 어색한 발음을 할 때마다 고역이다. 者가 人보다 낮춰 보는 호칭이라고 생각했을까. 이것도 일종의 열등감의 발로다.

 

그러면 기업을 먹여 살리는 소비자, 방송국의 가장 큰 자산인 시청자, 출판사가 존재하는 이유인 독자. 신성한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 등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당선인은 우대해서 人이고 표 주는 유권자는 하대해서 者인가.
 
지하도에서 누워 잠을 자거나 술을 마시는 노숙인을 보며 혀를 끌끌 차는 사람을 볼 때가 있다. 으이그, 인간아,,. 세상 왜 이렇게 사니?

 

한심한 인생이라고 무시당하며 사는 사람들이 난생 처음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난생 처음 헤르만 헤세의 소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읽었다.

성프란시스대학, 대한성공회에서 운영하는 노숙인을 위한 학교다. 오늘 밤 잘 곳이 없고, 당장 밥 한 끼와 빵 한 조각이 더 절실한 사람들이다. 책이나 배움보다 소주 한 잔이 더 그리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쓸모 없는 인간이라고 욕을 할 게 아니라 쓸모 있음을 알려 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교회가 제 역할을 못한다는 요즘 진정한 종교인이란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맞춤법도 몰랐던 이들이 글쓰기를 배워 글을 썼다. 그리고 책이 나왔다. 시도 있고 수필도 있다. 빼어난 문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 냄새 나는 따뜻함이 배어 있는 글이다. 읽을 만하다.

이런 책이 얼마나 팔릴까. 돈 불려주는 투자 방법을 알려주는 재테크나 단숨에 어학 실력을 늘려준다는 교재라면 모를까. 그래도 이런 책을 만드는 출판사가 있다. 나처럼 이런 책을 사서 읽어주는 독자도 있다. 삼인출판사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세상 인심이란 것이 그렇다. 친구도 돈 많고 밥 잘 사는 사람이 인기가 있고 정치판에도 어떤 줄에 서야 하는지를 기가 막히게 알고, 뜨는 권력과 지는 권력에 따라 줄 서기가 달라진다.

하물며 세상 오갈 데 없는 노숙자들에게 누가 눈길을 주겠는가. 이 책을 읽으면 알게 된다. 노숙자 그들도 나름 의미 있는 꽃이다.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의 쓸모를 알게 하는 진정한 학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