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앉았던 자리에 대한 예의 - 최세라 플라스틱 의자 네 개가 무릎을 붙이고 앉아 국화꽃 화분을 내려다 본다 오월이라서 무성한 잎사귀만 있고 아치형 철제기둥엔 녹꽃이 너댓 무더기 피어있다 아무것도 미동하지 않았다 수면은 손바닥으로 깎아낸 한 됫박의 곡식 같았다 바람도 스치지 않았고 그림자도 없었다 물은 물인 채 부풀고자 했으나 아직은 아니었다 녹슨 함석 담장 옆으로 모래가 쌓여 있었다 첫삽을 뜬다면 얼마만큼 파일까 사람이 서 있는 자리마다 길이 갈라지고 있었다 줄일 수 있는 데까지 볼륨을 낮추며 내가 앉았던 자리를 위해 오늘은 아무도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시집/ 단 하나의 장면을 위해/ 시와반시 손끝 - 최세라 엉겅퀴 피는 계절이면 보랏빛 입술 바르고 건천에 엎드리고 싶다 가뭄이 할퀴고 간 미소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