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하는 게 희망뿐이랴 - 정기복 희망을 버리지 못해 여기 왔다 떼어버리지 못한 갈증을 소주잔에 저당잡힌 채 절망을 불러모았다 흉어의 바다를 딛고 정박한 배 하선을 서두른 선원 몇이 완월동 오촉 전구 아래서 폭풍의 품값을 탕진하도록 꺼질 듯 꺼질 듯 꺼지지 않는 남풋불이 항구의 세월을 그을렸다 부두를 헤집던 비린 바람이 습기 찬 손길로 달려드는 자정 절망을 포기하는 게 술값 치르는 것처럼 쉬운 계산이라면 또 모른다 주머니 속 구겨진 지폐를 꺼내놓듯 살아갈 길 다림질할 수 있다면.... 버리지 못하는 게 어디 희망뿐이랴 *시집/ 어떤 청혼/ 실천문학사 모란공원, 봄 - 정기복 이곳에 오면 오래 걷지 않아도 흙살이 제 혼자 풀림을 금방 압니다 겨우내 언 땅 속에 얼지 않은 들꽃 씨앗과 애벌레 알들이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