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하다 스치기만 했는데 - 이기영
기를 쓰고 달아나는 걸 붙잡아
매달아 둔 발이었다
투명하지 않아서 상처 뒤는
더더욱 알 수 없고
빛의 행방을 쫓아 빨리 뛰어가는 심장이었다가
희미한 광기를 완성하면
비로소 반짝이는 눈물이었다가
난무하는 추측이었다가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을 숨기기 좋은 딱 그만큼의 달빛이
스친다는 건,
반쯤은 다른 타인으로 속수무책으로
지우고 싶은
지워지고 싶은 것들을 꺼내
눈먼 사람 몰래 흘리고 가는 것
그것은 차마,
나를 말할 수 없는 것
*시집/ 나는 어제처럼 말하고 너는 내일처럼 묻지/ 걷는사람
환절기 - 이기영
묶여 있는 개가 미동도 없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 나비가 난다
나비는 꽃이 일러 준 방향으로 날아가고
바람이 멋대로 동작을 바꾸면서 계속해서 나비를 흔들어도 그걸 춤이라고 묶여 있는 개는 상상한다 개를 묶고 있는 감나무는 늙은 개를 제 그림자라 착각한다
감또개를 수도 없이 떨어뜨린 늙은 감나무와 매일 늙어 가는 개와 봄 한철의 꽃 한 송이와 나비와 그리고 바람이 서로를 매만지면서 얼마나 지독하게 꿈틀대는지
소나기 지나가고 빨랫줄 물방울 하나가 진저리를 친다
그건 찰나,
맺혔다 사라진 공간을 쓰다듬는 건
매일 새롭게 식어 가는 태양뿐이다
# 이기영 시인은 전남 순천 출생으로 2013년 <열린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인생>, <나는 어제처럼 말하고 너는 내일처럼 묻지>가 있다. 2018년 김달진창원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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