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분홍주의보 - 배정숙

마루안 2021. 5. 22. 19:27

 

 

분홍주의보 - 배정숙


5월의 젖을 물고 있는 네 피부는 부드럽기도 하구나

네가 피어나는 소리에 한잠도 못 이루고
기어이 눈앞에서 스캔되는 분홍
5월과 궁합이 잘 맞는 색
빛의 잔망스러운 입술

그 한 점의 고집에 멱살을 내어주게 되면
오염인지 감염인지 흐드러진 향기는
참으로 위험한 구름인자입니다
그러니 눈치 없는 에로스는 키스를 조심해야합니다
분홍의 낙화
유혹은 하르르 봄을 따라서 쉬 지는 것
조심해야 할 것은 달콤하고
붉은 것은 오직 불안합니다

꿀이 흐르고
팡파르를 울리고
날고 싶은 길만 자꾸 날고 싶은 것은
분홍을 오독하는 때문입니다
한걸음 뒤로 물러나 보면 가시가 보이게 되는 것을
바람도 한 때 다정한 분홍의 방향으로 기울어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던 적이 있습니다

살얼음을 딛고서도
거짓말처럼 잠깐 전원을 꽂아보고 싶은
넌 핑크로즈

당신과의 거리가 달달한 핑크빛입니다


*시집/ 좁은 골목에서 편견을 학습했다/ 시와표현

 

 

 

 

 

 

못 찾겠다 꾀꼬리
-탁란(托卵)


종달새는 먹이를 구하러 나갔다

꽃이 필 때와 별이 빛날 때
소문만 무성하지 실체가 오리무중이다
바람을 비껴갈 날개를 갖지 못한지라
어수룩하니 어두운 시야의 유전자를 대물림한지라
먹이를  하지 못하고 돌아온다

그 사이 종달새둥지에서 알을 밀어 낸 꾀꼬리
날렵하게 입김을 지우고 꼭 다문 저 입술
콩가루 털어 두견이한테도 인심 쓰고 꼼수를 의논한다
두견이는 뻐꾸기가 손수 둥지를 틀었다고 손바닥을 뒤집는다

아는지 모르는지 그 길만이 길인 양
기생하는 남의 알까지 오롯이 건사하는 종달새
타고난 자비일지

노랑할미새가 촛불을 켜고 찾아낸 종달새 새끼
입에 물려진 공갈젖꼭지

모정을 훔쳤거나 모정을 적선했거나
싹수가 노란
저들의 섬뜩한 젖동냥 본능이라니

햇살과 바람과 구름의 탐(耽)스러움이 일치하지 않는 먹이사슬
오늘도 세상의 종달새는 흔들리며
먹이 사냥을 나가고
풀꽃들은 서로의 곁에 와서 피고 또 진다

 

 


# 배정숙 시인은 충남 서산 출생으로 신성대학 복지행정과, 한국방송대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했다. 2010년 계간 <시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나머지 시간의 윤곽>, <좁은 골목에서 편견을 학습했다>가 있다